시행착오가 축복으로

담장 너머 베트남 5

by 길문

떠나기 전 후배와 만나 간단히 여행 일정을 정할 때 첫날 계획은 단순했다. 9월 2일에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하노이 시내를 돌아보는 것으로 정했다. 첫날 계획으로 좋다고 생각했었던 건 차 타고 하노이 볼거리를 둘러보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니 하노이 시내 전체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4시간짜리 표를 구해서 버스 타고 1시간 정도 둘러보고 다시 볼 만한 명소를 집중 공략하기로 했었다. 이건 계획이었다. 계획!


일어나니 당연히(?) 아침이었다. 침대에서 벗어나 창밖으로 내다본 시내가 성이 찰리가 있었을까. 숙소에서 문을 박차고 나와 걷는 하노이 아침은 생각과 다르게 온통 소음뿐이었다. 빵빵거리고 정신없이 오가는 오토바이 물결. 매사 긍정적이라도 이걸 베트남의 역동성이라 느끼니 습한 날씨마저 상쾌했다고? 그럴 리가. 그렇지만 이런 이국적인 모습에 마음이 끌려 부정적인 마음은 어느덧 날아가버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하루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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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시내버스.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시티투어버스가 처음 출발하는 하노이 오페라하우스로 걸어갈 때 독립기념일 연휴가 발목을 잡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곳에 가자마자 티켓을 파는 매표소에서 바로 알려준다. 오늘 전석 매진이라고. 매진? 한국에서 온 촌뜨기 얼굴에 실망감이 드러났는지 호객꾼이 달라붙었지만 과감하게 떨치고 당당(?) 하게 나섰다. 어디로? 어떻게? 길게 늘어선 줄을 마다하고 버스를 탔다. 머릿속은 계속 암전 상태였지만 암전 후 뭔가 달라져야 하는데 여전히 암전이다. 당연히 플랜 B가 있을 리가 없었다. 머릿속 떠오르는 단어는 호안끼엠. 그 호수를 간다고 버스를 탔다. 그게 2번 버스였다. 그래서 하노이 국민 호수 호안끼엠에 갔을까?


버스를 타니 버스 안내양이 7,000동을 내란다. 어디를 가건 무조건 그 금액. 돈을 내니 차표 한 장 달랑 준다. 이 기시감이 뭐지! 아무튼 그냥 갔다. 버스 종점까지. 가다 보니 기찻길 마을도 지나고. 부도심 같은 곳도 지나고. 버스가 어딘가를 더 지나고 지나 종점에 도착했다. 어떻게 하지? 그때 떠오른 확실한 방법. 돌아가자! 종점에서 돌아올 땐 1번을 탔다. 그냥 탔다. 2번을 타지 않은 건 그건 방금 떠났기 때문이다. 적어도 원점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노선 차이가 거의 없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서로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이러다 하노이에서만 왔다 갔다만 하겠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j1rdM2Us4Ky0l7pI33dcCfJcdWI.JPG 대성당 내 성 요셉과 아기 예수.

그렇게 돌아온 하노이. 당연히 돌아와야 할 다른 이유는 여행 이틀째 묵는 숙소는 서호 근처였다. 옮겨야 하니 체크아웃을 할 수밖에. 서호 근처 숙소가 좋기는 했지만 숙소에 머물 여유가 없었다. 첫날을 이렇게 보낼 수 없어 다시 하노이 시내로 향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 서호는 하노이 중심가가 아니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갈 수밖에. 그래서 돌아왔는데 돌아와서 본 하노이 구시가는 어땠을까?


시행착오 끝에 확실히 알게 된 사실. 하노이는 올드 쿼터(Old Quarter)가 중심이란 것. 하노이 전체 면적이 서울보다 크지만 주요 볼거리는 올드 쿼터에 몰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호안끼엠을 찾아가서 시작하면 웬만한 거리는 비교적 걸을만했다. 이건 엄청난(?) 소득이었다. 결국, 하노이로 돌아와 내린 올드 쿼터 어딘가에서 점심을 해결했고 다시 짐을 풀고 나온 곳도 다시 하노이 올드 쿼터 어딘가에서 시작했다. 그럼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갈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서 빼놓지 말고 봐야 하는 필수 볼거리. 그곳이 성당이라니! 성당?

tfFwCvOTvSJIMN5DvDSCx7xav1w.JPG 성 요셉 성당 야경. 성당 안과 밖이 모두 예뻤다. 특히, 밤에 더 했다.

베트남에도 불타는 금요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노이 시내 불토는 역시나 불토였다. 벌써 저녁이 된 것이다. 연휴라 넘쳐나는 많은 인파를 뚫고 무조건 찾아간 곳이 성 요셉 대성당이었다. 하노이 여행의 핫플레이스. 성당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성당 크기가 신심과 비례할 것을 믿으며 '대'성당임을 확인을 하던 차, 역시나 이곳이 하노이 진짜 ‘성지’였기에 많은 사람들을 헤치며 성당 외관 사진을 찍고 성당으로 들어갔는데, 성당 내부는 여느 성당 같았다. 성당이니까. 그런데?


안에선 성경 교리 시간인 듯 기둥마다 늘어선 모니터에선 예수의 수난 장면이 보였고, 신부인듯한 누군가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남들은 열심히 교리공부하는데, 그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민망함을 벗어나려 할 때 알게 된 사실, 이 아니라 계시. 이건 신의 '계시'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성모상에서 촛불을 켜는 현지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는데 오후 7시 10분 전까지만 찍으란다. 10분 전? 곧 미사가 시작될 거라고. 미사? 하노이에서? 갑자기 무슨 도전정신이 불끈 솟기야 했을까만은. 겪어보고 싶었다.

SEK-4M3E7WjXIUTn20r4McYiAFA.JPG 미사 후 성당 앞 광장에서 어떤 예식을 마친 후 담소를 나누는 수도자들.

미사.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언어로 진행되는 미사라니. 이런 경험이 또 있을까? 이건 기회였다. 기회로 이름이 붙는 한 그건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놓치지 말자. 그래서 봤다. 미사를 드렸다가 아니라 정말 미사를 봤다. 알아들었냐고?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볼 수밖에. 그런데 역시나 미사다. 미사지만 느낀 차이는 언어뿐만 아니라 성당 안에 빼곡히 자리 잡은 신자들의 숫자부터 달랐다. 토요일이라서 그런가? 이렇게 많은 신자라니!


그렇게 얼떨결에 천주교 미사까지 봤다. 이런 것도 전적으로 여행이 주는 묘미지만 남을 욕하고 짜증 내려고 미사를 드리지 않으니. 그거였다. 건강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진심으로 빌었다. 이것도 기회인데 현지 문화 익힌답시고 앉아 있었던 시간이지만 이건 은총이자 축복이었다. 특이한 건 시간이 좀 더 걸린 미사 예식이 아니라, 미사 후 돌아가지 않고 성당 앞 광장에 모여 뭔가를 하는 그들 모습이었다. 뭐였을까? 미사를 집전한 신부와 수도자들, 신자들이 모여 통성으로 뭔가를 진행했는데, 그게 뭔지를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여행을 무사히 끝나길 빌었던 것처럼 그들도 그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라니! 이건 정말 베트남 여행 중 얻은 최고의 축복이라고 믿었다. 종교는 믿으라고 있는 거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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