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앤 젠틀맨!

담장 너머 베트남 6

by 길문

어제 하노이 성 요셉 성당에서 하느님께 미사를 드렸더니 그 덕인 듯 잠을 잘 잤다. 신의 은총이다. 그런데 마음에 걸린다. 오늘 부처님 뵈러 가는데 어쩌나?


육지의 하롱베이? 배 타고 유유 작작. 항무아의 뻥 트인 풍경. 여기도 베트남 북부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 호아루, 땀꼭, 항무아를 선택할지 바이딘, 짱안, 항무아를 선택할지. 후자를 선택한 건 누군가 배만 탈 거면 무조건 짱안이라고 해서. 귀가 역시나 얇았다. 두 군데 다 갔으면 더 좋았겠지만.

커피집 사장님/바이딘 나한상/관세음전/석가불전.

너무 일찍 여행사에 도착한 벌은 이른 아침 길가에 앉아 마신 ‘베트남’ 커피가 보상해 줬다. 샘샘이다. 역시나 오토바이 소리가 하노이 전체를 깨운다. 여전히 바쁜 아침을 뒤로하고 낯선 이들과 하루 여행을 시작했다. 말할 때마다 내뱉는 가이드의 ‘레이디스 앤 젠틀맨’이 익숙해질 무렵 바이딘 사원에 도착했다. 동아시아 최대 규모. 그렇지 규모다. 고색창연한 사찰을 생각했더니 그건 1136년에 지은 옛 사원이고, 둘러본 곳은 2010년에 완성한 곳.


어머나! 이렇게 크다니. 입구부터 전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지 않나, 관세음전을 거쳐 석가 불전에 들어갔더니 역시나 어머나! 모든 것이 크다. 아쉽게도 정해진 시간 때문에 대략 봤지만, 사찰을 도는 내내 온갖 자세로 속세에 찌든 군상들을 째려보는 500 나한상 숫자가 정말 500개인지 셈하지 못한 천추의 한을 뒤로 남겼다. 예전에 본 중국 사원보다 더 컸을까? 마지막 들른 석가불전 부처님이 한 말씀하신다. 그게 뭐 중하냐고! 그런데 부처님이 크긴 엄청 컸다.

짱안 배타기.

짱안강 배 타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두 시간 동안 노를 저으라고 했으면 입으로 온갖 비속어들을 뱉었을 텐데. 뱃사공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배 타고 유유 작작, too. 이곳도 역시나 카르스트 지형. 봉긋봉긋 속은 산인지 봉우리인지를 강물 따라 이리저리 둘러보는 여유라니. 시간은 결코 빠르지 않았다. 강물 속도처럼 아주 천천히 흘렀다. 그래서 든 생각. 여행은 다른 시간대를 경험하는 것 같다는. 어쩜!


드디어 항무아에 도착했다. 역시나 화룡점정은 마지막인데, 이런! 올라가야 한다. 산이다. 만리장성을 본떠 만든 계단수가 486개라니. 에게, 하면서 올랐는데 베트남 날씨다. 더웠다. 무아는 산이고 항은 동굴. 무아산 동굴? 동굴에 얽힌 전설은 그냥 그렇고. 그곳 정상에서 맛본 맛으로 더위가 뿅 하고 사라졌다. 누군가 최고의 뷰포인트라더니. 세상엔 최고가 너무 많지만, 닌빈 최고는 맞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땀꼭. 그 풍경 어디다 비할까. 아니다. 오늘은 그냥 이곳이 세상 최고다.


항무아 산 주변 풍경.

항무아 산에서 내려다보니 세상 다 본듯한 착각이 들 리가 없는데 그건 연꽃 때문이었다. 저 밑 광활한 연꽃 밭에 연꽃이 피면 그 또한 장관일 텐데 계절이 아닌가 보다. 연꽃이 언제 피더라? 이것만 있었으면 세상 다 본 듯 착각할 것 같은데 말이다. 짱안강 뱃놀이 하면서 언뜻언뜻 보이는 연꽃들이 별로였던 건 계절이 맞지 않아서였지만 아쉬운 마음은 아쉬운 거다. 어쩔 수 없으니. 잠시 멈춘듯한 시간을 넘어 비칠 비칠 졸음과 싸우며 돌아오는데, 누가 ‘레이디스 앤 젠틀맨’한다. 도착한 것이다. 하노이. 성실함을 넘어 진지함의 끝판왕. 가이드 루카(Luca). 벌써 그가 그리워진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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