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판시판

담장 너머 베트남 8

by 길문

날씨가 화창했다. 일기예보로는 오늘 비 온다고 했는데. 누구든 사파와 판시판 날씨를 예측하지 말라더니.

아침을 먹고 산정상도 해가 나오길, 혹여나 삼대가 덕을 쌓은 집안임을 굳게 믿으면서 ‘선 플라자’로 향했다. 복합 상가인 이 건물은 영화에 나올듯한 아름다운 건물인데, 이곳에서 판시판 가는 두 번째 여정인 호앙리엔 케이블카 역까지 모노레일을 탄다.

평화로워 보이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개찰구에 가니 역무원이 뭐라 떠드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표는 이미 구입해서 스마트폰으로 확인만 하면 되는데, 역무원이 무슨 말을 하다 답답했는지 잠시 기다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찌 한국인임을 알아챘고 번역 앱으로 모노레일이 고장이라 호앙리엔까지 갈 수 없다고 알려준다. 알아서 그곳까지 가라고. 그곳에서도 번째 여정인 케이블카는 판시판까지 운행하고 세 번째 푸니쿨라도 운행하니 정상에 갈 수 있다고. 난감했다. 전체 비용을 지불한 것뿐만 아니라 내일 이 표로 갈 수 있는지 몰라서 답답해하던 순간 친절하고 예쁜 매표원이 내일 와서 타도 된다고 한다. 그럼 예약한 날짜는 뭐지?

계단식 논.

별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내일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날씨는? 정상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해가 쨍쨍한 날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첫 번째 구간은 그렇다 치고 두 번째 구간 시작역인 호앙리엔까지 오늘 택시를 타고 가도 그럼 정상날씨는 맑을까? 이게 핵심인데 말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 보러 온 것인데 이걸 확신할 수 없다니. 매표소 안내원 왈 오늘도 내일도 정상 날씨는 보장을 못하니 알아서 하라고 한다. 고민과 고민을 거쳐 가볍게(?) 포기하고 내일 가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정상이 맑지 않다고 하는 데다 돈을 냈는데 모노레일도 타야 하니까 속성으로 포기. 역시 포기는 빨라야 한다.

어느 부족인지? 활짝 웃는 멋있는 그녀.

숙소에 돌아온 후 어딜 갈까 생각하다 깟깟 마을로 향했다. 민속마을 같은 곳. 사파에서 꼭 가면 좋을 곳으로 알려진 곳. 이곳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소수민족 관련 사진을 찍는 것이 목적이면 갈 만도 했지만 인위적으로 조성하고 여행객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곳이라니. 이걸 굳이 확인하러 사파에 온 것이 아니었다. 처음 계획을 짤 때 사파 트레킹을 생각하지 못했으니 이건 숙제로 남겨두고. 사파에서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도 했지만 일정으로 보면 트레킹은 무리였다.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은 시골 구석구석 현지인들이 어떻게 사는지였다. 그러던 차 알게 된 마을 이름. 간간히 외국인들이 방문한다는 그곳. 깟깟 마을에서 4km를 더 가면 나오는 마을. 신짜이!

엄마인 듯 새끼가 부지런히 뒤를 따라간다.

시골은 어디나 좋을까? 깟깟마을을 지나서 신짜이 마을을 향해 걷는 내내 오가는 오토바이는 여전히 분주했다. 산간 오지에도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여기도 마을버스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며 오랜만에 흙길을 밟고 걸어가는데 기분이 상쾌했다. 가다 보니 초등학교도 나왔다. 교문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들어가니 독립기념일 행사였다. 9월 2일이 독립기념일이니 연휴가 끝난 후 학교 수업이 시작하는 날 기념일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들어가 사진을 찍는데 누가 와서 나가란다. 찍지 말라고. 찜찜한 마음으로 좀 더 걷다 문득 하늘을 올려보니 판시판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보였다. 저 높은 곳에서 케이블카라니. 발도 피로하다고 아우성. 말 그대로 정당히 온 것이다. 여기까지 발로 느낀 소감이고, 나머진 이제 카메라가 말해줄 것이다. 이곳이 어땠는지 말이다.

뭔 일로 사람들이 모여 있을까? 물어볼 걸 그랬나?

걸으면서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말까, 마을 안 깊숙이 더 작은 길목으로 들어서야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나름 대로(?)를 걸었었다. 그러다 마주치는 이런 풍경 저런 풍경. 눈에 띈 순서대로 대충 떠들어대면 깟깟마을은 처음 입장하는 곳 말고 마을이 다 끝나는 곳에서도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이건 뭐지? 결국 어디로 들어가건 깟깟마을을 들어가려면 한 번은 입장료를 내야 한다. 계속하면, 신짜이 마을과 깟깟 마을 뒤편으로 가는 소위 삼거리에는 음식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현지인들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곳 옆에선 푸줏간인 듯 고기를 설겅설겅 썰어 매대에 놓고 팔고 있었다.


사진을 더 찍으려니 밥 먹던 사내가 째려본다. 워낙 소심한지라 사진도 못 찍고 걷다가 마주친 풍경들. 이발소는 참 소박했다. 의자 하나에 손님이 앉아있고 이발사가 머리를 깎고 있다. 좀 더 가니 마을 여성들이 보이는데 이곳이 빨래방인 것 같았다. 빨래방. 돈을 넣고 돌아가는 기계. 드럼세탁기였다. 어디 제품일까? 물어보려다 말이 통해야 말이지. 여기에 아스널 축구 광팬인지 농가에 걸려있는 나 팬이야라는 표지부터. 내가 외국에서 온 놈인 듯 시선을 거두지 않는 동네 개. 애를 등에 업는 것이 우리네 옛날 모습처럼 하고 있는 엄마. 그중 압권은 스마트 폰을 보느라 앞에 누군가 자기를 쳐다보는 것도 모른 체 걷는 여성이었다. 뭘 보고 있었을까?

왼편 위 케이블카. 저걸 타야 판시판에 갈 수 있다. 아스날 팬이 사나? 낯선 이방인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개. 아이 안은 엄마 모습. 스마트폰 보며 걸어오는 현지인.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는 단어가 정말 식상하지만, 사파의 번화가만 아니라 시골 구석을 걸어보면서 느낀 경험은 쉽게 이곳을 잊히게 할 것 같지 않다. 오랫동안 사파 시골이 생각날 것 같다. 사파에서의 기억이 이렇게 좋은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지 않은 것은, 저녁때 숙소로 돌아갈 때 위쪽 숙소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와 공터로 보이는 곳마다 들어서는 건물들 공사를 지켜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발! 어쩌다 이곳에 와서 잠시 머물다 돌아갈 뜨내기 입장에서 지금이 좋으니 더 개발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정작 현지인들이 원하면 그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잠시 생각을 하던 차에 몸은 어느덧 사파광장에 돌아와 있었다. 갑자기 시골에서 현대로 시간여행을 한 것 같았다. 싼 값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한 순박하게 웃던 청년의 등에 의지해서. 시간이동처럼 짧은 귀행 길이지만 몸은 돌아왔는데 마음은 그곳에 두고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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