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2019)가 쓴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재밌었는데, 오늘 예감은 맞았어도 재밌었다. 예감이 맞으면 재미있을까? 좋지 않은 예감은? 삼대가 덕을 쌓지 못한 건 알았는데 그게 나만 아니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남녀노소 집안 대대로 박복한 집안들이었다. 다행이다! 판시판 정상 오른 날이 그랬다.
정상이 포기하라는 포기는 아니고, 여전히 포기(foggy)라고 알고 갔지만, 정상이 맑은 날씨일 것이라는 바람(hope)은 언제나 싱싱했다. 바람이 진짜 불기도 했는데 오가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판타스틱. 역시나 올려 다 보는 것보다 내려다보는 것이 좋다. 그러니 사파가 좋다. 자주 봐서 눈에 익은 마을과 다랑이 논들이 올망졸망하다. 이런 풍경이 오늘 정상 날씨가 안갯속에 있을 것이란 '맞은' 예감을 상쇄했을까? 이건 정상이 맑아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선 플라자 역은 해리 포터가 마법 빗자루 타고 도착할 것 같다. 그만큼 예쁜데 어차피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디자인이 압권이다. 어제 멈췄던 모노레일이 오늘은 하얀 증기를 뿜으며 '풍풍' 소리 내며 다음 역으로 갔을까? 도착한 호앙리엔 케이블카 역은 그냥 동화마을이었다. 자연스럽긴커녕 인공적이지만 자연이 워낙 아름다워 조화가 잘되니 멋있다. 여기까지 판시판 오르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어도 올 것 같은 분위기. 유원지 같은 분위기이다. 그곳부터 시작된 케이블카를 탔다. 누구든 이건 다들 탈 것 같다. 남녀노소 누구든 말이다. 높이가 얼마나 될까? 발밑이 까마득하다. 계곡과 계곡 사이 중간에 케이블카 지지대가 없는 게 놀라웠다.
케이블 카 저 아래 다랑이 논이 한가득.여기서 한 번 더 다른 교통편을 타던가 걸어서 올라가던가 하면 된다. 이번 교통편은 푸니쿨라. 이걸 타고 얼마나 올랐을까 느낄 새도 없이 바로 내렸다. 너무 짧았다. 날씨는 부슬부슬 비에 바람 때문인지 쌀쌀해서 정상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정상 이편저편에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그런데 보여야 말이지. 적당히 인증삿으로 마감하고 뭘 할까 하다 바람을 피하려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이 카페의 목적은 정상을 내려다보는 장소가 아니라 포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차나 한잔 '끽다거' 하라고 전략적으로 만든 게 틀림없다. 보이지 않는 날이 더 많을 테니 부수입도 짭짤할 거고.
그곳에서 코코넛 커피 마시며 쉬다가 그냥 내려왔다. 이러면 실망인데 내려오는 동안 이것저것 볼 것을 많이 만들어 놨다. 전통 사원은 아닌 것 같고 불교와 도교와 민속 신앙이 섞인 사당이 여러 곳에 있는데, 여기
도 나한상이 늘어서 있다. 설마 오백나한상? 몇 분인지 세어볼까 하다 오늘 오후에 사파를 떠나야 해서 여유가 없었다. 하노이행 버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시간과 포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핑곗거리 포기가 있었으니. 암튼 포기 때문에 뭐가 뭔지 투덜대다 적당히 불탑과 부처님 좌상 등을 사진으로 남기고 포기를 할 땐 포기를 해야 해서 포기했다.
그런데 모노레일이나 케이블카가 만족스럽다. 가격대가 만만하지 않았지만. 푸니쿨라는 운행거리가 너무 짧아서 뭐 감흥을 느끼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사파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방법이 판시판산 정상밖에 없으니. 그것도 한 번에 쫙하고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이걸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냥 판시판산을 걸어서 올라간다면 하루에 다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걸어서 올라가면 1박 2일 걸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려오다 호앙리엔 역에 도착했는데 올라갈 때와는 뭔가 달라 보였다. 그게 뭐지? 그건 꽃이었다.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라벤더? 그랬을 것이다. 색감으로도 그렇고. 아니면 할 수 없지만. 라벤더 꽃이라고 믿으며 잠시 머문 공간. 뭐라고 꽃이 말하는 것 같았다. 사파가 인사하는 것이다. 잘 가라고? 언제 또 보겠냐고. 사파는 이렇게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인사했다. 사파 안녕!
부리나케 도착한 숙소에서 역시나 부리나케 가방을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구름 여사한테 부탁을 했더니 픽업차량이 도착할 거란다. 몇 시에 도착할지 보장하지 못하지만. 마음 비우고 기다렸다. 올 때 내돈내차 했으니 이번엔 대접받고 싶었다. 그랬더니 웬걸? 기대했던 시각 정시에 도착했다. 그렇게 우리만 타고 편안히 버스 회사에 도착했다. 뭔가 보상받은 느낌! 이건 당연한 건데 사람 마음이란 것이 이렇다. 이렇게 사파를 떠났다. 이는 하노이에 도착했다는 말. 이렇게 일정이 끝날 것 같았는데 사람 일이란 것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듯싶은 일이 생겼다.
굽이굽이 난 길이 주인공이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하늘 아래 동네. 논이 저렇게 자연스럽다니. 하노이에서 사파로 떠나는 날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이스라엘 여성. 그녀가 사파 G8 사무실에 있었던 것이다. 기억으론 사파에서 더 머물기로 했는데 바로 일정을 접어 하노이로 돌아간단다. 어제 한 7시간 정도 걸린 사파 트레킹이 환상적이었다면서. 그런데 다음 일정이 어디라고 했더라? 혼자 여행일정을 결정하고 수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그녀 말에 끄덕이면서 같이 차량에 올라탔다. 혼자 여행하면 좋을 것도 같지만 그게 말이다. 혼자 여행이 그것도 낯선 타지에서 꼭 좋은 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외롭기도 하고!
하노이로 돌아갈 때 역시나 중간에 두 번 쉬었다. 슬리핑 버스라서 버스 안에는 신발을 신을 수 없다. 그러니 버스에서 내릴 때 보기에도 지저분해 보이는 슬리퍼를 갈아 신어야 하는데 이 신발의 용도는 화장실을 가는 거다. 슬리퍼 신고 휴게소에서 이것저것 사서 먹어도 되고. 간단한 요기거리는 파니까.
버스 얘기를 더 해보면 같은 값이지만 2층으로 된 버스 중 아래층은 두 명이 같이 탈 수 있다. 이 말인즉, 아래층은 한 명 비용으로 두 명이 탈 수 있다는 말이다. 지켜서 보니 이때 한 명은 성이 다르다. 그러니 한 명이 여성이면 한 명은 남성이다. 어떤 칸에는 애까지 타던데 그럼 세 명도 탄다는 말이다. 어라! 2층이지만 난 혼자 탔는데. 필시 크기가 같은 공간일 텐데. 그렇다. 베트남 평균 연봉이 얼마더라?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남자끼리는 모르지만 여성이나 연인, 여기에 부부와 한 명 정도 가족이라면 같이 오순도순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정을 나누면서. 이런 이유로 인해 휴게소에서 차가 멈추면 얼굴이 생소한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언제 봤지?
라벤더가 안녕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정말 안녕! 사파에 올 때 같은 버스를 탄 벨기에 남성이 심각하게 슬리퍼를 고르기에 그만 고르라고 한소리 했더니, 이스라엘 여성과 그 남성이 파안대소를 했었는데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하노이로 돌아가고 있다. 시간이란 게 참! 그때 그 여성이 같은 버스를 같이 또 탄 것이다. 그러다 그녀와 수다를 떨었다. 이스라엘 여성과 말이다. 이름이 어려워 어떻게 발음할지 이름이 아낫 아욜이었던 것 같은데. 휴게실 물건들을 이것저것 둘러보다 서로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렇게 말문을 다시 트고. 대화는 버스 안까지 이어졌다. 하노이에 도착해서 전화번호를 물어봤는데 이 번호가 특이했다. 그게 자기 생년월일이라던데. 하하! 전화번호가 생년월일 숫자라니. 이것이 이스라엘에서는 가능한가 보다. 발음이 미국인 같다고 했더니 자기 억양은 이스라엘과 뉴욕과 홍콩이 섞인 억양이라나? 그게 그거였다. 구분을 못했는데. 하하! 암튼 그녀의 직업이 뭐고 지금 어디에서 살고 집에서는 홈스테이도 한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렇다. 여행이 이런 건가 보다. 만났다 헤어졌다 다시 만났고. 다시 헤어지고. 언제 또 만나려나. 이스라엘에서? 생각해 보니 그녀는 지금도 베트남 어딘가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건강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