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같다. 먹고 자고 입고 싸고. 또 뭐가 있을까?
사람은 다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교육과 자연환경도. 뭔가 다른 것이 더 있을 텐데?
이번 여행에서 이런 결과를 얻었을까? 우리 모두 평범하다는. 내가 평범하다는 것과 우리 모두 평범하다는 것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당연히 내가 평범하다는 거야 새삼스럽지 않지만 다른 이들도 평범하다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이렇게 일반화를 하면 개인적으로 위로가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행을 통해 보는 세상은 평범한 이들의 ‘세상’ 일 것이다. 어느 곳이든 경제적이건 정치적이건 특별한 사람들이야 있을 텐데, 그들을 직접 보고 만나기는 힘들다. 이건 아마도 내가 평범해서 그런 것이지만, 여기에 나와 다른 이들을 달리 묘사할 경험이 절대 부족한 것도 있다. 어쩜 여행은 서로 다른 사람사이의 간극이 어떤지를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간극. 서로 사람들 간 차이야 당연히 있는 거고. 그들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간극 안에 펼쳐지는 삶의 다른 모양. 이것을 보러 가는 것은 아닐는지.
오토바이의 용도는 다양하다/자전거로 과일을 파는 여성 행상. 베트남 여성은 강하다! 베트남에 갔다. 놀러 갔다. 가면서 베트남의 정치체제를 심사숙고하면서 갔을까? 이번에야 다시 생각해 본 것이지만 베트남은 사회주의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다. 그럼에도 여행 중 사회주의를 경험했던가? 사회주의가 뭐더라?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 더불어 이곳은 분명히 일당이 지배하는 국가임에도 중국보다 국가권력이 잘 분산되어 있는 국가이며, 지방권력도 다른 공산국가에 비해서 상당히 강하다고 한다. 여행 중 이를 경험했을까? 이런 것을 경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설령 장기간 일하러 가면 혹시나 모르겠다. 사업과 관련된 건 그 국가 시스템을 두드려야 하는 것이니까.
베트남 종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후배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천주교 등 다른 종교가 있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오호! 이런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베트남 남부 지역에는 이슬람교도도 있다. 여행 중 어느 날 하노이 성 요셉 성당에서 진행하는 토요일 저녁 미사에 참석했었다. 자유로웠다.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신앙의 자유는 보장되는 것 같았다. 이걸 체제 범위 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여행 중 만난 현지인들도 우리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닌 건 어떻게 설명할까? 호안끼엠 호숫가에서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던 그들 모습. 우리와 뭐가 다르지?
독립기념일 연휴 때문일 것이다. 거리엔 사람이 많았다. 베트남 사회에서도 가장 민감한 것은 정치권력과 언론자유, 그리고 인권을 논하는 문제일 텐데 뜨내기 여행객이 이를 제대로 알 수가 있을까? 이런 내용을 알려고 베트남 여행을 하던가? 결국, 지나다 보고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일 텐데 말이다. 어쩜 이것이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나와 다르지 않은 그 누군가가 발견하는 그래서 얻는 위안 말이다. 물론, 속속들이 들어선 생각을 알 수가 없지만. 그곳에 살아도 알기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다행히 여행 중 만난 한국인들이 우리 보다 못한 나라라고 하대하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와의 경제 규모, GDP 등의 차이가 나지만 이건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 1년에 벼농사를 몇 번씩 짓는 나라. 국토에 많은 천연자연이 묻혀 있어 경제발전을 하는데 가속도가 붙을 수 있는. 평균 연령이 40대인 우리보다 10년 정도 젊은 국가. 전체 인구도 1억에 가깝고, 플러스 요인으로만 작동될 근면하고 부지런한 국민들.
성 요셉 성당 앞은 항상 붐비는 핫플!/인도를 점령한 오토바이. 인도의 주인? 하노이 아침을 깨우는 건 역시나 오토바이였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한 그들 생활을 보면서 숙소에서 길거리에서 관광지에서 스치듯 지나쳤던 젊은 그들. 이건 오토바이가 주는 신속함과 역동성이 베트남의 커다란 자산으로 여겨졌다. 오토바이가 주는 이미지가 베트남이 주는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였을까? 오가다 느끼는 그곳이 시골이건 도시에서건 마주친 그들은 정말 젊어 보였다. 청춘 베트남!
멋모르고 떠난 닌빈과 하롱 베이뿐만 아니라 사파와 하노이 길가에서 만난 현지인 모두 서울에서 체감하는 ‘늙어가는’ 사회가 주는 분위기와는 뭔가 달라 보였다. 중국과 프랑스 등의 외세를 스스로 이겨내고 독립을 쟁취한 국가. 알아보니 몽골까지 이곳에 내려왔었고. 뭔가 그들에게 근기가 느껴졌다. 조만간 더 잘될 것이라는 믿음까지 더해서.
생각해 보니 사파에서 본 소수민족들, 하노이 시내 시장 한쪽에서 봤던 남루한 건물과 보통 사람들의 일상 등을 마냥 호기심으로 본 건 아니다. 여행 중 베트남 화폐가 주는 환율을 생각할 때마다, 그 덕에 여행 중 잠시 좋은 숙소에 머물렀다고 해도, 이건 속된 말로 ‘돈 쓰는 재미’를 잠시 누린다는 것뿐. 매연이 심한 거리에서 작은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그들을 이국적으로만 본 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을 자꾸만 과거 어느 시점의 우리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들과의 ‘차이’를 좁혀 언젠가 우리 모습이었다고 보기에도 그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다른 것이었다. 과거 우리의 1960~1970년대 혹은 1980년대라고 하기 엔 이미 세상은 저만치 나아간 상태였다. 질적이건 양적이건 무척 달라진 것이다. 그로 인해 그 '차이'가 얼마나 그들을 앞으로 더 나가게 할지 누구도 모를 일이다.
초등학교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 베트남은 젊다.
행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냐고? 도이 모이는 읽을 수 있다. 결국, 말하고 보니 짧았던 여행의 가장 핫한 맛은 피부색깔이 좀 달라도 같은 ‘사람’에서 나온다는 것. 이걸 알았다는 것인데, 하나를 더하자면 어린이들이었다. 비록, 사파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생계를 위해 전통 복장을 갖춰 입던 유아들을 보며 아린 가슴을 쓸어안았지만, 신짜이 마을과 사파 시내 초등학교 학생들의 행사에서 뭔가를 외쳐대던 아이들로 인해 베트남의 미래가 밝아보였다. 뭔가의 가능성! 이것이 이번에 얻은 두 번째 여행의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사는 것 같다. 아니, 산다. 다들.
그들을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