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힐튼

담장 너머 베트남 13

by 길문

호안끼엠에 있는 응옥썬 사당은 몽골군을 물리친 베트남 영웅 쩐흥다오를 기리는 유교와 도교를 혼합한 사당이다. 몽골군이 베트남까지 내려왔었나? 몽골군이 안 간 곳이 없다니. 이놈들. 속전속결. 세계 이곳저곳 점령하는 것도 그렇고 오고타이 칸(몽골제국 2대 왕)이 죽자 후퇴도 속전속결. 위에서 하라는 것은 정말 하라는 데로 잘하다니. 그러고 보니 베트남은 몽골군도 물리친 국가였다. 역시나.


지난번 호수를 둘러보다 더위 때문에 포기했었던, 낮이라서 그런지 그렇고 그런 다리 같던 이곳이지만 밤에 보면 붉은색으로 칠한 다리가 더 붉게 보였던 건 조명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꽤 아름답게 보였었는데, 그래서 이곳을 확인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지나는 길이기도 했으니 이쪽으로 한 번 더 온 것이었고 그렇게 도로를 건너 호수로 향하는데 누가 아는 체를 한다. 어여쁜 현지 여학생이다. 늙다리 아저씨한테 데이트를 신청할리가 없지만. 혹시나!

소박한 사당. 밤에 멀리서 보면 제법 볼 만하다.

얼굴이 햇빛에 탈까 봐 잠시 마스크를 하고 있었는데도 한국인이냐고 물어본다. 이곳 사람들은 내가 한국인임을 쉽게 알아본다. 이구! 엄마와 도란도란 말하며 걷다가 나에게 말을 건 거다. 자기는 지금 수원에서 공부한다는 유학생이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학생. 뭔가 이곳을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잠깐 솟아서 사당을 지나칠 수 없었다. 그저 그럴 것 같은 사당이라 패스하려고 했는데, 거기에 가면 박제된 거북이 두 마리를 본다지만 굳이 산 거북이도 아니고 박제된 거북이를 보러 갔겠는가?


사당은 생각처럼 소박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 바람도 소박했을까? 바람은 컸을 것 같았다. 바람이니까 말이다. 들어준다고 누가 보증하는 것도 아니니. 모른다. 소원 크게 빌어서 크게 소원성취할 지도. 그럼 좋은 건 아닐까?

현지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응옥썬 사당. 가운데 사진이 빨간 다리. 낮에 보면 그저 그렇다.

사실, 이쪽으로 온 이유는 한국에서 환전한 돈을 찾으려 했다. 수수료를 물지 않는 두 개의 은행들. 이곳에 그 은행 지점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의 은행도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아도 수수료를 내고 싶지 않았다. 먼저 VP 은행을 갔다가 TP 은행을 간 건 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 은행이 비교가 될 수밖에. 놀라운 건 TP 은행이었다. 정확히 ATM. 이건 한국 체크카드를 넣으면 돈이 바로 인출된다. 정말 간편하다. VP 은행 ATM은 날 거부했었다. 여권 번호도 물어보고. 그렇게 시작한 걸음. 내처 걷다 보니 올드 쿼터까지 왔는데, 벽에 무슨 포스터가 붙어있다. 뮤지컬 공연하나? 공연장 치고는 건물이 작은 듯싶었다. 표를 끊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여기가 그곳이다. 베트남 판 서대문 형무소?

사당을 품고 있는 호안끼엠 호수 일상. 평화란 좋은 거다.


하노이 힐튼


형무소. 프랑스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가둔 정치범 교도소. 처음 헷갈렸던 것은 이름 때문이었다. 메종 센트럴(Maison Centrale). 뭔 뜻? 중앙에 있는 집? 여기에 포스터까지 붙어있고. 여기서 공연하나 했더니. 이곳이 하노이 명소가 된 호아로 교도소 박물관이다. 프랑스인들은 교도소를 이렇게 고상하게 불렀다니. 이게 프랑스 감성? 베트남을 혹독하게 통치했던데.

여성 감방(위 오른쪽)/ 남성 간방에 같이 있던 변기(아래 오른 편). 볼 일을 어떻게든 봤겠지?

들어가서 둘러본 결론. 이건 하노이 원 픽이어야만 했다. 입구가 작아서 규모가 작은가 하고 들어갔더니 아니었다. 박물관까지 같이 있었다. 아픈 역사를 다뤘는데 이런 곳은 의례 서양인들이 많다. 편견일까? 진지해 보이는 그들 얼굴. 이건 오디오 가이드를 듣느라 그런 것도 있지만, 이들 중 프랑스 인들은 없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가해자와 피해자. 일제 강점기도 그랬을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린 여전히 정쟁으로 활용하는 중요한 소재인데. 다시 궁금해졌다. 베트남인들은 프랑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렇지. 여긴 다당제 국가 아니지 않던가. 다를 것 같다. 우리와 말이다. 자기한테 유리하다면 그것이 뭐든지 그걸 유리하게 써먹는 것이 정당이지만 다당제 국가가 아니라서 생각의 차이가 거의 없을 것 같다.

안과 밖은 글자 차이의 그 차이가 아니다.

형무소 내부는 상상한 이상이다. 집단으로 머문 곳에서는 다들 보는 앞에서 볼 일을 봐야 하는 치욕.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족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 한 곳에 몰아놓은 곳부터 사형을 앞둔 사형수를 위한 독방까지. 탈출하다 걸리면 처형했던 기요틴(guillotine)도 있었다. 굳게 닫힌 철문을 보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히기도 했다. 내가 이곳에 있었다면? 감정이입을 한 것인데. 다른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철통 같은 이 감옥에서 누군가는 탈옥에 성공했다니. 삶이란 게 참!

장기수들과 사형수가 머문 곳. 시설이 끝내준다(?)

수용소 건물을 나와서 다 본 줄 알았는데 옆 동으로 옮기니 분위기가 확 달랐다. 이곳을 한때 독립군 양성소로도, 미국과의 전쟁 중에는 미군 포로수용소로도 활용했었다고 한다. 건물을 다목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현명함이란! 이곳에 걸린 미군 포로사진들을 보면 수용소 분위기가 자유로운 듯 보였는데, 이건 어디까지 전시용이다. 공산주의 체제를 위한 선전으로 포로들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미군 포로들은 이곳을 하노이 힐튼이란 별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미군이라고 진짜 호텔처럼 서비스를 제공했겠는가!

이곳을 탈출한 사람들도 있었다니(위쪽)/실제로 사용한 기요틴. 육중한 감방 문. 답답하다!

수용소 외관이 전체적으로 멋진데, 이건 알고 보니 건물 형태 때문이었다. 프랑스풍? 건축을 제대로 모르니 뭐가 프랑스풍일까 하지만, 쉽게 생각하면 베트남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와 뭔가 맞지 않은 것 같은 건물들이 다 프랑스풍이라고 보면 이해가 된다. 특이한 건 이곳 수용소 건물에 들어가는 건축자재들을 다 직접 프랑스에서 들여왔다는 것이다. 맙소사! 재료가 프랑스 수입산이라서 수용소 생활이 더 좋았을까?


Made in France. 높은 지성과 품위가 인상되는지? 프랑스가 식민지로 다스린 국가가 몇 곳이더라? 어려운 문제이다. 과거는 과거인데 잊을 수 없는 과거. 그래서였을까? 눈이 자꾸만 한 곳에 가서 머문다. 벽 위에 촘촘히 박아놓은 병조각들. 유리조각들. 저것도 직접 프랑스에서 공수한 병들일까? 설립 초기부터 있던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저렇게 높은 곳까지 어떻게 손이 닿는다고 박아놨을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식민지 생활이란 것 자체가 생각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경험한 적이 없으니. 이런 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좋지만. 그러니 다행일까?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태어나서 말이다. 이걸 운명이라고 한다면 좋은 운명과 그렇지 않은 운명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누가 나눠주는 것일까? 나눠준다면 나누는 기준은 누가 결정할까?

형무소 역사가 전시되고 있다/담장 위에 유리까지. 기어 올라갈 수도 없는데/미군 포로 사진 전시/추모탑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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