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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시작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파울로 코녜티(2017). 여덟 개의 산. 현대문학

by 길문

메루산이라고 하니 낯설다. 수미산이라고 하니 어딘가 낯이 익다. 수미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8849m) 지만, 고대 인도인들은 세계의 중앙에 메루산이 있다고 믿었다. 그 산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8개의 큰 산이 둘러싸고, 산과 산 사이에는 커다란 바다가 8개 있다고. 구산팔해. 가장 바깥쪽 바다 사방에 섬이 있는데, 그중 남쪽 섬에 인간이 살았다나? 어렵다!


파울로 코녜티. 이름도 생소한 이탈리아 작가.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옐료는 알겠는데 코녜티라니. 2017년 스트레가상을 수상했다는데 이런 상도 금시초문. 작가 이름도 그렇고. 그저 그런(!) 소설인데 어떻게 읽었을까? 소설이란 것을 알면서 읽는 내내 소설 내용이 참 소박(?) 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생활도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여운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찌꺼기가 잔뜩 남아있는 여운. 이건 뭘까?


이런 소설이 좋은 소설? 이건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좋았던 감정을 전하려는데 이게 쉽지 않다. 사실, 이 책을 찾게 된 건 영화 때문이었다. 선배가 이 영화가 좋은데, 상영관을 찾지 못해 보지 못했다고. 지금까지 누적 관객 수가 10,000명을 넘었을까?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는 특별한 의지는 없었는데 혹시나 찾아보니 딱 세 군데에서 상영 중이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인데. 참, 대단하다!


아, 빠진 게 있다. 소설이 좋으니 영화도 당연히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니 소설보다 영화 평가가 더 좋았던 것 같던데, 그럼에도 소설 얘기를 하려는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영화를 처음 얘기한 선배의 '복심' 때문이다. 선배가 생각한 영화의 배경 말이다. 이게 어쩌면 핵심일는지 모른다. 산. 알프스! 몬테로사? 가슴이 뛰는가? 스위스와 이태리에 걸쳐 있는 산. 몬테로사. 이 산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 어쩜 이 산을 끼고 있는 알프스산맥이 주인공일런지 모른다. 그곳에서 두 사나이가 우정을 쌓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러다 산 사나이 브루노는 틀림없이 먼저 메루산으로 떠났을 거다. 그렇게 믿는다.


거기서 그는 여전히 친구 피에트로를 그리워하고 있겠지? 그래서 여운이 묵직하게 깔리겠지? 당연한데 이것이 말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죽음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어떤 감정'이 떠오른다. 이건 뭘까? 소설을 읽는 내내 드러나는 감성은 죽음이 아니었다. 브루노가 죽었을 것이란 암시보다 주인공이 느꼈을 정서. 이는 작가 스스로 해발 2천 미터 산에 집을 짓고 여름이면 그곳에 머물며 종이에 글을 쓴다고 하니, 이게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아니, 그걸 드러내려 소설을 썼겠지?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라나 주민들이 갖는 폐쇄성, 고집스레 산을 오르는 피에트로의 아버지, 더 나은 삶을 선택하지 않는 브루노 등 이런 등장인물을 내세우는 거야 작가가 의도한 것이지만, 그 목적 말이다. 왜 그랬을까? 이걸 외로움 때문이라면 이건 소설을 잘못 읽은 것 같다. 역시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두 남자의 끈끈한 우정? 산이 맺어준 산이기에 가능한. 이게 바다라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산이어야 한다. 그것도 알프스.


어린 시절 그들에게 산은 같이 뛰어놀고 호흡하던 과거였다. 그들 사이의 우정이 깊어진 게 이유는 아니지만, 두 가족 사이의 갈등으로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헤어지고. 그럼에도 둘 다 자기들 아버지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결과로 피에트로는 산을 멀리하고, 브루노는 아버지와 연을 끊고. 여기까지가 1부의 이야기다. 2부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성장한 피에트로와 아버지를 따라 벽돌공으로 살아가는 두 친구의 재회. 그 결합의 결과는 산에서 같이 집을 짓는 것. 이것이 상징하는 건 과거와의 화해와 관계의 복원을 의미한다. 그렇게 복원된 그들 우정은 깊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던 겨울 어느 날 친구는 세상을 등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삶은 역시나 감성적이지 않다. 이를 뭐라고 표현할까?


인정할 건 인정하면, 소설은 아무래도 영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소설보다 영화가 좀 더 나은 평가를 받는 건. 그럼에도 다시 인정할 건 인정하면, 영상은 말이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또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니 소설이 더 좋다고?


"아버지를 따라 산을 타던 것을 그만둔 지 한참이 지나서야, 어떤 인생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산이 존재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나와 그의 인생에서 정중앙에 있는 산, 우리의 인생이 시작된 처음으로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높은 첫 번째 산에서 친구를 잃은 우리 같은 사람은, 단지 여덟 개의 산을 배회할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ny4rktZy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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