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년으로 기억한다. 호주 대륙에 최악의 산불이 났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온난화가 주범이었다. 그로 인해 숲 1860만 헥타르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게 어느 정도? 한반도 면적의 85%. 엄청났군! 시간은 별일 있었나 하고 지나갔다. 이건 산불이 잡혔다는 의미이다. 그 후 산불이 다시 났지만 불은 언젠가 다시 잡힐 텐데 피해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코알라다. 그때 코알라 8천여 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이다. 겨우 8천여 마리? 숫자가 아니라 비율이 전체 개체 수의 30% 정도라는 것이다. 심각했군!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이 이제 뉴스거리나 될까?
코알라가 생각난 것은 루시 쿡(2018) 때문이었다. 루시 쿡? 이번에 알게 된 동물학자이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자인데 이름이 루시다. 그러고 보니 "왈가닥 루시(I love Lucy)"가 생각난다. 그 루시와 이 루시는 당연히 다른 사람. 이 책을 굳이 구분하면 동물학이니 자연과학이 되겠지? 읽는 내내 빌 브라이슨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빌 브라이슨이 누군지 모르는 것이다. 동물학계의 빌 브라이슨? 아니 동물학계의 루시임에 틀림없다. 1950년대 CBS에서 방송될 당시 시청률이 무려 68%까지 되었다는데, 이 책도 틀림없이 그랬을 것 같다. 동물학 책이 이렇게 재미있으면 어떡하냐고?
이 책의 원제는 동물에 관한 뜻밖의 진실(The Unexpected Truth about Animals)인데, 여기서 핵심은 '뜻밖의'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한'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어떤 동물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는 취지로 책을 쓴 것 같지도 않다. 해당된 동물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을, 인간들 스스로 오해와 착각이 만들어낸 시각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정하게 되긴 된다. 이게 책을 쓴 이유? 책을 쓴 목적이 그랬을 것 같기도 한데, 읽다 보면 인간이란 종이 별로 뛰어나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는지 말이다. 어찌 보면 실수를 자주 범하는 인간에 대한 몇 가지 사례집 같기도 하다. 어떻게 착각했는지 대상이 된 13가지 동물에 한정해서 말이다.
이 책의 미덕은 재미있다. 해박한 지식과 다른 무엇보다도 열정과 노력.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서구 몇몇 학자들은 이런 놀라운 업적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걸 보면 그저 감사하다. 아직도 지구 어딘가 오지에서 젊음을 지피면서 관찰하고 노력하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이건 그 결실이다. 축적이다. 루시 쿡이 이걸 집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책일 것 같지 않지만 이렇게 웃긴 책이 또 나올지 장담하지 못하겠다. 다음에 이런 책이 나오면 코알라도 실렸으면 좋겠다. 세계사에 판다만큼 정치적 동물이 될 수는 없겠지만 판다가 주는 이미지 못지않게 코알라도 귀여우니. 정확히 표현하면 귀여워 보이니까 말이다.
어느 날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나무늘보가 표범에 잡혀 먹히는 걸 본 적이 있다. 항상 그럴까? 최근엔 나무늘보가 표범의 공격을 피해 잽싸게(?) 달아났다고 한다. 잽싸게? 이 책에는 뱀장어, 비버, 나무늘보, 하이에나, 독수리, 박쥐, 개구리, 황새, 하마 말코손바닥사슴, 판다, 펭귄, 침팬지가 나온다. 다 알 것 같은 동물들인데 읽다 보면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이 탈로 난다. 부끄럽냐고? 그러고 보니 동물들은 부끄럼을 아는지 잘 모르겠다. 이거 한 번 연구해 볼까? 몇 년 걸릴까?
이 책의 두 번째 미덕은 번역이 매끄럽다. 매끄럽다를 정확히 지적할 실력이 되지 않아서 부끄럽지만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번역을 했으니 매끄럽지 않다고 해야 할 다른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번역자는 왜 책 제목을 오해의 동물원이라고 했을까? 부제를 달았는데 제목이 '인간의 실수와 오해가 빚어낸 동물학의 역사'이다. 이러니 이 책은 동물의 역사책이 아니다. 동물학의 역사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번역자가 왜 책 제목과 부제를 이렇게 붙였는지.
오해라? 잘못 이해한 것도 인간이지 동물 때문이 아니다. 자기들 스스로 오랫동안 오해를 불러일으키도록 해놓고 이제 와서 오해를 풀라고? 동물들이 오해하라고 했던가? 그런 동물들로는 여기서 하이에나, 나무늘보, 독수리, 말코손바닥사슴이 나온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하이에나와 나무늘보가 몇 종이나 되는지 알면서 보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여기에 하마, 펭귄, 판다를 그렇게 만든 것도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애꿎게 아리스토텔레스나 프로이트 등도 소환된다. 그들이 어떻게 실수를 했는지.
앞선 하이에나, 나무늘보, 독수리, 말코손바닥사슴의 예는 오해의 사례로. 하마, 펭귄, 판다는 착각의 사례로 구분하더라도 역시나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그렇게 선을 그어놓은 것일 뿐. 몇몇 동물을 만화 주인공으로 만들어 그 오해를 덫 칠하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인간이 간섭해서 결과가 좋은 사례가 많지 않으니. 간단히 기억나는 것만 언급하면 유럽에서는 비버가 멸종상태이고, 항아리곰팡이균으로 인해 특정 개구리들이 찰레에거 멸종까지 이른 것을 보면. 더해서 정력에 대한 만고진리(?) 때문에 오늘도 페루 리마에 가면 음낭 개구리가 믹서기에 갈려서 나온다니. 언젠가 누군가 인간도 연구해서 이 책에 나오는 동물 명단에 오를 날도 있을 것 같다. 오해와 착각을 잘하는 동물로써 말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침팬지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침팬지가 웃는구나 하고. 영국에 있는 피지팁스라는 홍차 브랜드를 만드어 파는 회사는 이를 활용해서 광고를 했었나 보다. 지금은? 여기서 잠깐만! 이때 침팬지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장면은 말 그대로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니"(p.404)라는 것이다. 이건 침팬지가 불안하고 걱정되고 두려울 때 내는 의사표시라고 하던데, 이럼 생각이 달라지지 않던가?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니듯이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듯이 동물의 세계에도 우리 인간이란 동물이 뭔가 기여할 것이 아직 있는 것은 아닐지. 지금까지 인간이 빚어온 실수와 오해로 만든 예상되는 결말을 조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는 방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