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 가고 싶다.

메이브 빈치(2018). 그 겨울의 일주일. 문학동네.

by 길문

'그해 겨울은 따듯했네.' 소설가 박완서가 쓴 1983년 소설이다. 제목과는 반대로 그해 겨울은 따듯하지 않았다. 여동생이 임종을 맞는 순간 여주인공(아주 동생에게 못된 짓을 한)이 참회를 했는데, 여동생이 이를 알아들었는지 글쎄다. 설령 알아들었어도 용서를 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궁금했다. 참회하면 다 용서되는 걸까? 비슷한 내용의 영화도 있다. '밀양'에서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 자신은 이미 회계를 통해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떠벌린다. 이에 아들을 잃은 전도연은 절규를 한다. 엄마로서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둘 다 내용이 어둡다.


어두운 내용을 계절로 비교하면 주로 겨울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인생에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고 비유한다. 봄은 희망이다. 이건 겨울이 춥기 때문에 몸이 움츠러들고, 이로 인해 마음도 쪼그라들게 되니 더 부정적으로 느낀다. 겨울에 대한 느낌이 이러니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자연의 일부인 것 같다. 혹시나, 겨울인데 마음이 항상 온기로 가득 찬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그저 계절의 변화에 그것도 고작 일주일이란 시간. 일주일을 다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생각에 온기를 돌게 하는 소설은 맞는 것 같다. 일주일? 인생이란 긴 항해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인데, 이 기간이 주는 의미를 주인공 각자의 인생과 비교해서 전기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시간으로 작가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렇게 특별하지 않은 일주일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해 겨울을 다들 따듯하게 보낼 것 같은 느낌은 전적으로 작가가 만들어낸 스토리의 힘이다. 메이브 린치? 그녀가 쓴 마지막 소설인데, 그녀는 이미 세상에 없다. 유고작인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건 단순했다. 제목 때문이었다. 일주일 동안 겨울을 보내는 얘기(a week in winter). 평범한데 이곳이 아일랜드라고 한다. 아일랜드? 이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게 기네스 맥주와 위스키뿐. 아니다. 영화 '원스'도 있었다. 어느 펍에서건 사람들과 흑맥주 한잔하면서 음악을 듣고 수다를 금방 떨 것 같은 나라. 그런데, 이것보다 더 강한 끌림은 뭔가 황량함, 척박함, 우수에 찬 도시 골목 등 아일랜드에 대한 이미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 그것도 겨울이라면.


소설은 스토니브리지라는 마을을 언급하면서 시작하는데, 잠시 착각을 했었다. 진짜 이 마을이 있는 줄 알았다. 아일랜드 서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오래된 저택 스톤하우스가 진짜로 있어야만 했다. 이곳 호텔에 처음으로 오는 손님들이 머문 기간은 1주일. 그런데, 내용은 그 1주일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소설 속 주인공 모두의 이야기다 보니 그들이 그때까지 살아온 인생이 각각 담겨있다. 아주 평범하지도 아주 극적이지도 아주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우리 같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렇다고 소설로써 가치 없었다고?

치키는 스톤하우스 호텔을 경영한다. 스토니브리지 태생인데, 젊은 날 사랑에 빠져 미국에 갔다가 남자친구한테 버림을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오래된 저택을 호텔로 개조해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리거는 어린 시절 문제아였다. 그렇게 떠돌다 치키를 도와 스트니브리지에서 결혼을 하고 정착을 한다. 치키의 오른팔 올라는 치키의 조카로 어린 나이 때 그렇듯이 고지식한 부모를 떠나 호텔 일을 돕는다. 이런 여행이 가능할까 생각하게 만드는 위니는 예비 시어머니와 서로 불편한 동행을 한다. 서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할리우드 스타로 잘 나가다 비행기를 놓친 핑계로 스톤하우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존 이란 남성이 역시나 우여곡절 인생을 들려 줄다.


헨리와 니콜라는 부모님의 뜻과는 다르게 전문의가 아닌 일반 의사로 살아가다, 비극적인 사고를 목격한 후 잠시 스톤하우스에 머무른다. 이들은 결국 그곳에 정착해서 의료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금수저인 안데르스는 회사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과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 사이에서 망설이다 스톤하우스에 합류한다. 그는 어떤 길을 걸어 갈지 고민하면서 이곳에 숙박한다. 그저 냉혈한으로 묘사되는 전직 교장 넬 하우는 중간에 호텔을 떠나는 인물로 그려진다. 남보다 특별하게 세상을 보는 예지력을 가진 프리다는 정작 자기 인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유부남한테 바람맞고 이곳에 머무른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들과 별다르지 않은 소설 속 인물들. 이 책이 보다 가치 있었던 것은 아일랜드 작가의 눈을 통해본 세상살이에 대한 묘사 때문이다. 문장 곳곳에 드러나는 그곳 사람들의 일상. 이런 건 어떤 방식으로도 경험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들의 생활과 가치관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설이라서 가능한 거지만, 그런데 정작 내게 준 감동은 소설 내용보다 다른 곳에서 밀려왔다. 북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 인구가 별로 없는 목초지가 주는 쓸쓸함. 이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욕구가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그곳 강한 바람처럼 마음을 흔들었다. 특히, 그곳 바다 끝에 있다는 클립스 모어(Cliffs of Moher). 이곳에 가고 싶어졌다. 최대 높이가 300m에 이르고 그 길이가 10km에 이른다는 그곳. 앵글로 색슨족의 땅이 아니라 켈트 족의 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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