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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Aug 09. 2024

솔직히 말하면.

최은영(2021). 밝은 밤. 문학동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젊은 작가 중에 가장 떴던, 아직도 뜬 작가 아니던가. 중단편의 여왕 같은 아주 훌륭한 작가가 장편을 들고 왔다. 그녀는 이미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이전에 장편을 썼는지는 잘 모른다. 장편이라서 책에 손이 갔던 것도 있다. 단편을 잘 쓰는 이가 장편을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다.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는 바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알기는 알겠는데 선뜻 동감이 되지 않았다. 마치, ' 짠 밥'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봤다. 이전에 읽었던 그녀의 단편집들을 읽을 때 감탄했었다. 사람이 사람과 맺는 관계를 이렇게 섬세하게 다룰 수 있다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런 기억이 정확한지도 잘 모르겠다. 오래전이라서. 그렇다고 그때도 작가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세계관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소설은 소설이다. 그렇다고 소설을 얕보겠는가. 그렇지만, 다시 생각을 해도 가장 와닿지 않은 이유는 소설 속 주인공이 이혼한 이유가 남편의 바람 때문이지만, 이혼을 계기로 인해 증조할머니, 여기에 새비 할머니와 친할머니, 그리고 엄마까지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뭔가 어색했다. 뭔가 아쉬운 소구력. 소설의 내용을 명확히 인과관계로 분석하는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더불어 소설이라도, 해방 이후 이 땅의 여성들 삶이 거의 모두 질척대는 남성들 때문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와닿지 않았다. 


백정이었던 삼천이를 아내로 맞이한 증조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없다. 오직, 종교적인 신념 따라 결혼했기 때문에? 중혼을 하면서 할머니를 속인 남편, 이를 알면서도 강제한 아버지, 남편과 아버지로 대표되는 수컷들 때문에 할머니의 삶이 출발부터 삐걱거렸는데. 호적상 엄마(할머니)의 딸이 아니었기에 순탄하지 않은 삶이 할머니 때문이라는, 여기에 엄마와 나와 이혼에 대한 다른 관점이 주는 불편함, 주인공은 오로지 남편의 바람 때문에 이혼을 했다는. 소설이기에 평범한 여성들이 나오면 소설이 안되니, 여성들의 질곡을 표현하기 위해 조금 규범에서 벗어난 여자들의 삶을 표현해야 소설이 되지만. 


여자의 일생이 불행한데, 대부분이 남성 때문이라고 느껴져, 작가가 소설을 쓴 목적은 그게 아니라도 자꾸 전체 소설이 주는 감동이 반감되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지연이 이혼을 하고 스스로 '희령'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데, 그곳에서 지연이 할머니와 만나는 장면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할머니가 얼마나 될까? 자기 손녀딸 만나면 가장 먼저 손녀딸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가 아는 체를 하는 것이 할머니 아니던가? 작위스러웠다. 세 번째는 1930년대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려다 보니 대화가, 북한 사투리로 이뤄지는데 자꾸만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만 느끼겠지?


언젠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느낀 점을 소환하면, 역사 속에서 잊힌 간도땅 공산주의자와 민생단 사건을 복원시킨 점은 아주 훌륭하지만, 소설의 완성도란 측면에서 그것이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뭔가 아쉬움이 있던 것처럼, 《밝은 밤》은 그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여기에 자기까지 전체 4대를 그리는 큰 그림의 완성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거야 읽는 독자 마음이지만. 문학세상에선 다들 누군가 공들여서 만들어낸 작품들을 깎아내리지 않고, 다들 칭찬으로 좋게 말하는 것이 불문율 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백정의 아들도 아니고 딸로 태어난 삼천이가 겪었을 아픔과 이를 같이 견뎌나가는 친구 새비의 우정은 감동스럽다. 이런 것이 소설이 주는 힘이 아닐까. 현실적으로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 묻지 마시라. 1930년대 시작된 이들의 우정이, 현재 이혼이란 상처로 힘들어하는 지연에게 이어지면서 과거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화해 하는지, 이를 새롭게 만들어낸 건 정말 작가 최은영의 힘이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소설이란 양식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소설이란 장르를 소설 쓰고 앉아있네, 할 때 그 소설이라도 소설이 힘이 센 이유이기도 하다. 


이혼한 지연은 희령으로 직장을 옮긴다. 그곳에서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와 관계를 넓혀가면서 사진을 통해 자기와 닮은 증조할머니와 연결이 된다. 백정의 딸이라 천대받던 증조할머니가 남편을 만나, 지금 할머니를 낳고, 그 할머니는 중혼을 속여 결혼한 남편과 딸을 낳는다. 그 딸이 지금 어머니다. 할머니는 호적에도 올리지 못한 딸을 홀로 키우고. 증조할머니를 힘들게 한 백정이란 신분이 아버지 없이 큰 엄마에게 이어진다. 엄마는 아버지를 만나 자기를 낳고. 자긴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과 이혼을 한다. 1930년대와 일본의 패망과 육이오라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어떻게 증조할머니와 유일한 친구 새비와의 우정이 주인공 지연까지 이어지는지에 대한 소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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