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3이 오전 6시 12분
2024년 5월 23이 오전 6시 12분
죽을 결심을 한 날로부터 4개월이 지났다. 대답 없는 메시지도, 단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길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침 7시면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도, 아침이면 한결같이 찾아오는 속 쓰림과 숙취도, 술에 절여져 떨리는 손도, 주말 아침의 햇살을 보기도 전에 핸드폰과 컴퓨터로 일 처리하는 동안 빠르게 뛰는 나의 긴장된 심장도, 주말 늦잠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나의 시간도, 휴일에도 계속되는 항 편으로 업무를 하느라 사랑하는 작고 귀여운 우리 조카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도 보지 못한 나의 빌어먹을 시간도,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전화받고 있는 나의 관심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의자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곧 업무에 대한 혐오가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혐오로 변하던 시간도, 공동체 속 강요되는 웃음과 억지스러운 입담도, 돈과 사업으로 연결된 모든 관계도, 의중을 알 수 없는 모든 날카로운 말들과 눈동자들도, 내뱉었으나 마음속에 흡수되지 못하고 허공에 떠도는 언어들도,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업무상의 이유로 감히 함부로 대하는 인간들도, 지친다. 싫다. 결핍된 것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자고 싶다. 하루 동안 핸드폰과 컴퓨터가 없는 곳에서 , 푸르고 투명한 곳에서 나를 내려놓고 8시간만 푹 자고 싶다.
<3월 어느 날 나만 보는 일기장에 썼던 글>
녹색과 사시사철 푸르른 계절로 나의 삶을 장식하고 맘껏 꾸미며 살고 싶었습니다. 내가 여러 차례 손목을 긋도록 하는 데에 특출 난 장기가 있는 사람들이, 조직 생활에 특화된 성격을 지닌 어떤 사람들이, 예쁜 마음을 가지고 배려심 있는 말을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그토록 상처를 주고 죽고 싶을 만큼 고통을 줬는지. 만약에 내가 그랬다면 진작에 무릎 꿇고 사죄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함께해 왔기에 그저 당연한 듯이 여겨지는 관행들. 도저히 고쳐질 수 없는 예의 없는 행동들.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소시오패스적 발상들(XXX 씨는 정말로, 정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하셔야 합니다. 만약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이 문장들을 보고도 자기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면, 영원히 죄책감 가지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이걸 보면, 단순히 나 자신의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위험품 자격증 때 있었던 일은, 그 누구들은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든다며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이로 인해 사람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놓아버리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사람이 살기 위해 다니는 곳이지, 죽고 죽이기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내가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지, 나랑 가장 친했던 사람이 한순간 나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며(중간중간 계속 믿었지만, 결국 1년 뒤에 자기가 말한 거라 인정을 했고, 그마저도 내 잘못으로 치부하며 끝났던 대화)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에 산산조각이 나서 내 마음을 도려내었습니다.
아랫사람이기에 당연히 윗사람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문화. 한국 회사이지만 중국 지사라는 지리상의 고립 때문인지 당연하게 학습되고 받아들여지는 이곳 자체의 카르텔과 가스라이팅. 내가 이 회사를 다니며 스쳐 지나갔던 친구들과 덧없는 인연들. 내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사람들.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나와 우리 모두가 삶의 갑작스러운 폭풍에 의해 피부가 녹고 이에 살점들이 흙 위에 떨어질 때, 이 모든 건 우주의 0.000001광년보다도 못한 실체일까. 아주 우스운 하나의 먼지일까. 어쩌면 먼지보다도 못한 하찮은 실존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는 나는 내가 괴로운 그 모든 이유에 대해 자유로울 수도 있다. 내가 괴로워할 이유는 이로서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기에. 영화와 드라마에서, 아니 전부는 아닐지라도, 주인공과 여러 역할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갈등이 고조되며 주인공이 감정적 혹은 육체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경우, 작가는 주인공에게 타당하게 주어져야 하는 진심 어린 사죄와 보상을 계획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움과 고통은 타당하게 사죄되어야 할까.
음과 양이 완벽하게 균등한 순금 100%의 세상은 없다. 합을 이루기 위해선 순금이 아닌 금을 바라봐야 하고, 그 금은 반드시 기타 물질이 포함된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삶은 고통스럽다.
가파른 절벽과 사시사철 푸른 동백나무가 세월의 시침이 하나둘 지나감에 따라 점점 퇴색되고 색이 옅어진다. 공상과 희망이 살해당한 뒤 세상사와 그 안의 먼지에 의해 조각당한 나는 눈물조차 쉽게 흐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