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어느 날

더운 습기

by 사월의 미도리

더위를 한시름 덜어놓은 길 위에 신호등의 초록빛이 반사되어 나의 앞에 놓인다. 적막하고 편안한 도로의 냄새, 땀을 내뿜는 듯한 습한 나뭇잎의 향기, 가로등이 붉게 물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 붉은 벽돌이 담을 이루는 건물의 맨 위층에 홀로 불이 켜져 잇다. 완전한 어둠 속에 켜진 불빛은 밤의 달빛처럼 아늑하고 아름답다.

음악이 바닥의 선율로 흘러간다. 그저 낮은 옥타브의 악보가 아닌, 가장 낮은 곳의 음을 연주한다. 일렁이는 일말의 비열한 희망과 목적이 무의미하다. 그렇게 연주되는 화음이 내 앞을 가로질러간다.

기분 좋은 습기라니,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리에서부터 나를 감싸는 습한 수분이 이내 코로 전해지며 포근한 향이 풍겼다. 과거에 미처 내가 갖고 오지 못했던 조각 하나처럼, 모난 기억 속 어딘가에서 이제야 나를 찾아온 듯한 더운 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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