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 가면은 자기 자신을, 나이긴 하지만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자신의 의지를 따라서 변신하게 해 주는, 물리적이면서 형이상학적인 ‘변신의 도구’이다.
가면을 착용한다는 것은 비단 어떤 형상이나 상징으로 한 인간의 얼굴을 가린다는 물리적인 행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면을 쓰다’ 또는 ‘가면을 착용하다’라는 표현에는 한 인간의 내면을 숨기거나 가리는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가면을 착용하는 것이 마음이나 양심을 가리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경우에는, 가면을 ‘착용’하는 행위만이 아니라 ‘가면 그 자체’ 또한 부정적으로 비치게 된다. 이러한 경우 ‘가면을 썼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사용하는 것은 그 또는 그녀의 행동이나 사고에 반사회적이거나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경계와 비난의 의미가 그 안에 담기게 된다.
인간의 얼굴은 타고난 운명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면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자신의 얼굴에 착용할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다. 또한 얼굴은 한 인간의 정체성이기에 가면을 얼굴에 착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변화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가면을 착용한 채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 말은 한 인간에게 있어 정체성이 오직 한 가지 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면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게 자의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가면을 착용한 인간을, 그 인간이 아닌 타인인 나는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할까. 인간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기적인 존재이다. 자신이 착용한 가면에 대해서는 한 없는 너그러움이 발동되지만, 타인이 착용한 가면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가 인간이다.
가면을 착용하는 행위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가면을 쓴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를 알면서도 그 모습을 스스로가 원했던 것이고, 그 모습이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의도된 것이기에 가면의 착용을 너무 부정적인 눈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가 가면을 착용하고 있다면 가면의 형상이 바로 그 인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타인의 눈으로만 자신의 현재 얼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좌우가 대칭적으로 바뀐 또 다른 나의 형상이고 사진에 찍혀 있는 얼굴은, 비록 그 사진에 아무런 효과를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있었던 나의 얼굴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이라 믿고 있는 자신의 얼굴과 타인이 보고 있는 자신의 얼굴 중에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인 허상이라고 인식하는 것일까.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자신의 실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얼굴은 허상인 것이고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자신의 실체라면 타인은 지금 자신의 허상을 보고 있는 것이 된다.
얼굴과 가면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가 가면을 착용하고 있다면 자신의 얼굴과 가면 중에 실체와 허상을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을 사회적 가면의 관점으로 넓혀보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은 실체인 것일까 허상인 것일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가면을 착용하고 있다면 그 사회에서는 얼굴이 가면이고 가면이 얼굴인 것이다.”
이 경우 얼굴을 가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개념은 더 이상 대립적이지 않게 되어 얼굴과 가면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결국 가면을 쓴 자신의 모습과 실체로서의 자신의 모습은 분명 둘이긴 하지만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의 자신이다. 그래서 얼굴을 실체라는 정(正)의 개념으로 그리고 가면을 허상이라는 부(不)의 개념으로 간주하는 정논리(Positive Logic)를 기반으로 한 사고를 ‘논리적인 사고’라고 할 수만은 없다. 가면을 ‘정’의 개념으로 얼굴을 ‘부’의 개념으로 간주하는 부논리(Negative Logic) 또한 실체로서의 얼굴과 허상으로서의 가면이라는 문제에 있어 논리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y 고일석(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