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그 아이는, 유난히 이사가 잦았다. 아이의 이사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아비가 살아가게 될 곳이 아이가 뛰어놀아야 할 곳이었고, 아비가 떠나는 날이, 아이가 친구를 잃어버리는 날이었다. 이사에 있어서 그 아이에게는, ‘아비’라는 말과 ‘아이’라는 말이, 어쩔 수 없이 한 지붕을 덮어야만 하는, 사이 나쁜 동거인의 별칭일 뿐이었다.
이사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초등학교 2학년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는 간유리가 끼어 있는 창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어렴풋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살아보면 알게 된다. 추억의 창은 애써 투명하게 닦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저 너머의 그날에, 삶에 있어,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의 발원지가 새겨져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지난번과 그 지난번처럼, 더 다가서지 못하고 거기 어디쯤에서 돌아설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날 이후 매 해를, 여러 해 동안을 줄곧, 아이에게 있어 이사란 건 셋방에서 셋방을 전전하면서, 일순 헤집어 놓은 여섯 식구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두 개의 좁은 방에 끼워 맞추어 넣는 연례 퍼즐 맞추기 행사 같은 것이었고, 옆집 철수며 뒷집 순이, 마을 입구에 있던 만화방이며 골목을 떠돌아다니던 누렁이의 흔적을 덮어버리는 무채색의 저녁 어둠 같은 것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지난 계절의 늦은 비인지 다가올 계절의 이른 비인지, 비가 내리고 있다. 속 하얀 에스프레소 잔을 진갈색의 액체로 채운다. 해 묵은 책을 뒤적이다가, 눈 껌뻑이며 <이사 가던 날>을 듣다가, 괜히 몇 줄을 긁적이게 된다. 비라는 게, 커피라는 게, 인생의 어느 시점에 오면 그런 것이 되나 보다. 뒤를 돌아보게 하는.
‘돌아보는 날이 많아진다는 것은 나이를 먹었다는, 서글픈 증거’라고 누군가 말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