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열여덟의 한 계절에 실체를 찾아 떠난 변명

3. 열여덟의 한 계절에 실체를 찾아 떠난 변명


이 책 저 책, 검은 잉크를 꾹꾹 눌러 박은 활자에 정신 줄 놓고 지내는 사이 파장 길어진 하늘빛이 나무 둥치며 잎사귀에서 물기를 빼내고 있었다.

해야 할 무언가를 찾아다니거나 하고 싶은 무언가에 매달리다 보면 몇 달이란 시간은 변덕스러운 계절의 한 자락처럼 수이 지나가기 마련이다.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등빨 좋은 나무 끝에 매달려 초록을 털어내던 나뭇잎이 조각조각 가위질한 색종이를 이어 붙인 듯 붉고 노란빛을 허공에 조사하고 있었고 대학생이란 이름으로 신분을 위장한 날에 시작한 순례 길은 열여덟의 가을에 이르러 낙엽의 체취보다 더 향 짙은 책의 숲길에서 하염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의 순례와 부유란 게 방랑과 유랑에 입혀진 채색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순전히 물기 잃은 머리숱 때문이다.


“난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실존하는 존재인 걸까."

"대체 실존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만 실존한다 할 수 있는 걸까."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존재에 대한 질문이란 것이 인간의 삶에 던져진 영원한 난제임을 깨닫는 것은, 아직 씨알 제대로 굵지 못했던 그 시절에도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사실 그것을 난제라고 인정하는 순간, 그것이 체념의 발로에 기인한 것이고, 젊은 날의 체념이란 것이 너무 이른 실패자로 비칠 수 있기에 꺼려지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했었기에, 꼭 어딘가 답이 있을 거라는 미련을 밀쳐낼 수 있게 되었으니, 몸이며 마음이 조금이나마 더 가벼워질 수 있었다.


그래도 다만 그 언저리라도 기웃거리다가 보면 혹시 나에 대해, 혹시 나라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매일 같이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변명을 앞세운 기약을 가슴에 담아두고서는 일상의 길을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초록의 물기가 빠져나갔고,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전공 서적을 문학 서적 삼아 읽고 또 읽어 머릿속에 집어넣는 갈색의 시간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나 질기고 버석하게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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