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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 Sep 01. 2023

물고기의 잠

두 눈을 번쩍 뜨고


불면증에 시달린 나의 첫 반려물고기


살면서 물고기를 몇 번 키워본 적 있는데, 그중 잊을 수 없는 아이가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 첫 직장이었던 언론사에서 수습을 막 떼고 1년차 기자로 지내던 때의 일이다. 사회부 수습을 끝내고 배치받은 국제부는 백프로 내근 부서였는데, 그땐 현장에 나가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무지 사무실에 정을 붙일 수 없었다. 뭐라도 소중한 것을 책상 위에 가져다 두면 나을까 싶어 동기들과 청계천 수족관에 가서 물고기 한 마리를 사왔다. 엄지손가락 만한 구피였다. 녹색과 주황빛이 뒤섞인 화려한 꼬리를 가졌던 그 친구에게 나는 ‘아바타’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몸 색깔이 꼭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을 연상시켰기에.


구피는 색상과 꼬리 모양, 무늬가 굉장히 다양한 물고기다 (사진 출처: wikimedia)
나와 잠시 함께 살았던 아바타. 사진첩을 뒤져보니 2013년 5월에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연지)


하지만 아바타는 얼마 못 가 곧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속상했고 또 궁금했다. 밥도 열심히 주고 물도 깨끗이 잘 관리해줬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부장의 짜증섞인 목소리를 계속 듣다가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까. 비좁은 어항에 혼자만 있어서 외롭고 답답했을까. 아바타는 어느 날 이상하게도 같은 방향으로 힘없이 뱅뱅 돌며 회전하다 결국 보름도 못 가서 죽고 말았다.


슬퍼하는 내게 모 선배가 물었다. “너 밤중에 어항 신문지로 덮어줬었어?” 국제부는 해외 뉴스를 다루는 부서인 만큼 시차 때문에 야근 당번들이 돌아가며 밤을 새는 부서였고, 그래서 밤새 사무실 불이 켜 있는 층에 있었다. 모 선배는 아바타가 24시간 내내 매일 밝은 빛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거라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물고기의 잠에 대해 생각해봤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얘네는 대체 언제 잠을 자는 거지? 아니, 왜 잠자는 모습을 상상조차 못했을까. 물고기는 매일 눈을 동그랗게 번쩍 뜨고 있기 때문에?


눈꺼풀이 없는 물고기는 눈을 감고 싶어도 감을 수 없다. 사진은 홍콩 goldfish market에서 판매 중이던 물고기들 (사진: 연지)


자고 있는 거, 맞아?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기에 매 순간 눈을 뜨고 있다. 잘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물고기 연구자들은 아래와 같은 상황을 물고기의 수면 시간으로 추측했다.


1. 몇 분간 움직이지 않고 물 표면 가까이, 혹은 바닥에 가만히 떠 있을 때

2. 잘 활동하다가 특정 시간 해초 안이나 산호 아래로 후퇴해 잠자코 있을 때

3. 빛을 쏘이거나 먹이를 떨어뜨렸을 때 반응이 많이 느릴 때


* 사실 이 세 가지 모두 ‘잔다’고 판단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다. 잠시 멍 때리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래서 어떤 연구자들은 이들의 잠을 ‘휴식(rest)'이란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물고기 오스카(oscar)는 밤이 되면 바닥으로 이동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움직이지 않는다. (사진 출처: aquariumcoop.com)


생각해보면 나의 아바타는 볼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침 눈여겨볼 만한 논문이 하나 있었다. 제브라피쉬(zebrafish)를 대상으로 한 수면 연구였다. 이 물고기에게 빛과 전기 자극을 주어 계속 못 쉬게 만들자 이들은 잠을 거의 못 잤다. 또한 전기 자극에 오래 노출되었던 제브라피쉬는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 길었다.*


* 연구 결과 이들은 빛 때문에 못 잔 것은 맞지만, 그때 못 잔 시간을 따로 보충하진 않았다. 전기 자극과 달리 빛은 수면을 보충하게까지 하는 요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모 선배의 추측이 맞았던 것 같다. 나의 아바타는 빛과 소음에 24시간 노출되어 있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던 것이다*


* 인간이 일주기리듬, 즉 몸 안의 생체 시계에 영향을 받으며 일정한 사이클에 따라 잠을 자듯이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일주기리듬은 빛과 온도, 식사 시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눈이 없는 장님동굴물고기(Mexican blind cavefish) (사진 출처: National Geographic)


한편, 잠을 원래 안 잔다고 여겨지는 물고기들도 있다. 빛이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깊은 해저에 사는 물고기, 태생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동굴물고기 등이 그렇다.


블루피시(blue fish)나 가다랑어처럼 늘 해표 근처에서 무리지어 이동하는 물고기들도 계속 유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을 잔다고 추측할 만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 상어나 가오리 같은 물고기는 뇌의 반은 자고, 반은 깨어 있는 단일 반구 서파 수면(Unihemispheric slow-wave sleep)을 한다. 엄밀히 말해 잔다고도, 깨어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다. 단일 반구 서파 수면에 대해선 ‘올빼미의 잠’ 회차 참고!


디즈니 니모의 모델이기도 한 흰동가리(clown fish).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말미잘에 숨어 있는 모습 (사진 출처: getty image)


우리가 잠을 자는 주된 목적이 신체와 정신 건강을 회복하고 기억을 보다 선명히 저장하기 위해서라면, 깊은 물 속에 살거나 눈이 안 보이는 물고기들이 안 자는 건 그런 시간을 따로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깊고 조용한 바다에선 별다른 환경 변화나 자극 없이 천천히 헤엄치며 매일을 보내게 되고, 그럼 에너지 소모가 크지 않을 뿐더러 특별히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도 없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이런 해석은 개인적으론 크게 와닿진 않는다. 인간도 처음부터 빛이 없는 동굴에서 태어나 살게 되면 안 자게 될까. 장님으로 태어나도 잠도 자고 꿈도 꾸지 않나. 물론 인간과 물고기의 생체 구조나 생활 환경은 완전히 다르고, 그에 따른 수면 패턴 또한 차이가 크겠지만.



물고기에게도 단잠이 필요했다


어쨌든 나의 첫 반려 물고기 아바타는 수면 박탈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사실 아바타가 비실거리기 시작할 때 이 친구를 회사로부터 피신시키고자 얼른 집으로 데려왔었다. 하지만 이미 쇠약해져 있던 아바타는 집에 온 지 거의 삼 일만에 죽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출근 전 아파트 단지 화단에 묻어주고 조용히 기도했던 날이 떠오른다. 물에 살던 아바타는 그렇게 죽어서 땅에 묻혔다.


그로부터 5년 뒤, 나는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그사이 부서도 여러 번 바뀌고 현장도 누빌 수 있게 됐었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은 지 오래였다.


6년간 몸 담았던 직장을 마침내 나오기로 결심한 뒤 사표를 제출하기 직전, 나는 거의 2주 넘게 한숨도 못 잤다. 애증의 마음이 가득했던 그곳을 나오는 일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고, 나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계속, 살아나가고 있다.



* 참고 자료

- <Who Needs Sleep Anyway?>, Arizona State University, askabiologist.adu.edu

- <Sleep in Fish>, Wikipedia, wikipedia.org

- <How do Fish Sleep?>, Sleep Foundation, 10 May 2022, www.sleepfound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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