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가 다 되도록 해는 보이지 않았다. 손가락만 살짝 갖다 대도 물 폭탄이 터질 것 같은 하늘이었다.
탄은 지하철 역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산을 펼쳐 들었다. 비는 아직이었지만, 그래도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으므로. 그는 우산 손잡이를 아래쪽으로 바짝 당기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달리기를 이렇게 각 잡고 하러 가게 될 줄이야…….
탄의 삶에서 마라톤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금쯤이면,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이면 탄은 수영장에 가 있었다. 수영도 탄에겐 꽤나 강도 높은 움직임이었다. 친구들이 축구나 농구를 하러 운동장에 뛰쳐나갈 때 탄은 창밖으로 그들을 내다보며 책을 읽곤 하는 아이였다. 건강을 위해 틈틈이 아파트 복도에서 줄넘기 정도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서른이 넘어 수영에 취미를 붙이게 된 건 그로서는 사건이었다. 물론 그것이 더 큰 사건으로 이어질 줄 미리 알았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어쨌거나 탄의 삶 속엔 이제 수영이 아닌 달리기가 있었다. 대회장과 가까워지자 마라톤 안내 현수막과 공중에 떠 있는 커다란 애드벌룬이 보였다. 웅성대는 소리와 행사를 앞둔 들뜬 분위기가 습한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탄이 참가할 마라톤은 신문사와 유명 스포츠브랜드가 함께 주최하는 대회로, 주행 코스는 5km와 10km, 하프 코스가 전부였다. 시작부터 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탄은 주저 없이 가장 짧은 거리로 참가 신청을 했다.
마라톤 대회 거의 한 달 전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다. 처음엔 숨이 조금 가빴지만, 꾸준히 뛰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는 듯했다. 5km는 천천히 뛰어도 20분 정도면 완주할 수 있었다. 탄은 연습할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둔 날부터는 5km를 다 채운 후에도 경로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30분가량 더 뛰어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처음으로 러너스 하이를 경험했다.
난생처음 느끼는 가뿐함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탄의 몸을 강하게 옥죄어 온 그 보이지 않는 무거운 사슬들이 모조리 터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원인 모를 죄책감도 억울함도 모두 달아나게 하는 순간이었다.
탄은 그 순간을 붙잡기 위해 매일 필사적으로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일정한 호흡으로 계속 뛰어도 절정의 상태에 이르지 못했던 날이 딱 하루 있었다. 가지 말아야 할 골목에 들어섰던 날이었다. 지난해부터 탄이 의식적으로 피해 다니는 수영장이 있는 구민회관 쪽 골목이었다. 그곳을 우회한다는 걸 그날은 깜빡했던 것이다. 탄은 자기도 모르게 들어선 그 길을 서둘러 벗어나면서 한참 동안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래도 마라톤 주행 코스는 안전할 것이다. 그곳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아닌, 가야 하는 길만 놓여 있었으므로.
대회장에 도착했을 무렵,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탄은 우산을 접고 탈의실 전용 천막에 들어가 입고 온 바지를 벗고 러닝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러곤 우산과 옷가지를 맡기러 물품보관소 천막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그곳에서 이나를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