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거 하려고 꼭두새벽부터 나온 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이나는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견출지와 네임펜 들을 정리하며 친구들의 재잘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나저나 이번 대회에서 짐을 맡아주는 방식은 이나가 보기에도 왠지 허술했다. 락커룸은 따로 제공되지 않았고, 참가자들은 입구에 끈이 달린 비닐 가방을 받아 짐을 그곳에 다 넣은 뒤 이나를 비롯한 자원봉사자 학생들에게 건네주면 되었다. 짐들은 번호표를 달아 커다란 천막 아래 공터에 열 맞춰 보관되었다. 만 명 가까이 되는 참가자들 짐을 다 수용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이나는 마라톤 주최 측 직원에게 해야 할 일들을 안내받으면서 고개를 자주 갸웃거려야 했다. 그래도 뭐, 별로 어렵지 않게 봉사활동 시간을 따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별다른 불평 없이 참가자들을 잘 맞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첫 번째 줄이 다 채워지고, 두 번째 줄에 짐들이 막 쌓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녀의 눈을 보고 흠칫 놀라는 이 사람, 중키에 마른 체형, 둥그렇게 굽은 어깨, 허여멀건한 얼굴 위 매가리 없이 축 처진 눈…… 아니, 이탄이 왜 여기에 있나.
탄은 이나가 건네준 하얀색 비닐 가방에 갖고 있던 짐을 허둥지둥 던져넣고 있었다. 그는 곧 가방 입구를 끈으로 조인 뒤 이나에게 돌려주었다. 이나는 탄의 짐 가방에 그의 등 번호와 같은 숫자가 적힌 번호표 스티커를 붙였다. 그러곤 뒤편에 일렬로 늘어선 물품들 사이로 탄의 짐을 갖다 두기 전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찾으실 때 여기 쓰인 번호 말씀해주시면 돼요.”
여분의 번호표 스티커를 건네주며 그녀는 다시 한 번 탄을 쏘아봤다. 이나는 탄이 먼저 아는 체하는지 지켜보고 싶어 끝까지 그를 못 알아본 척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나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무슨 말이라도 할 듯 입을 벙긋거리더니 이내 황급히 사라졌다.
“저 아저씨 아직도 저 모양이네.”
이나는 이번엔 이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인이나, 너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고 있냐.”
“안 웃었는데?”
이나는 탄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친구에게 대꾸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에 탄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하긴, 오늘도 혼자 온 모양이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