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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rang Oct 26. 2020

명절에 체하는 이유

사진 출처 네이버

<좁은 부엌>

명절이 되자 오랜만에 만난 남자들은 몇 마디 안부를 묻고는 앉을자리를 찾아 떠난다. 두 명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듯 소파 양쪽 끝에 앉아 tv를 보고 한 명은 거실 창가에 앉아 핸드폰을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에 누워 핸드폰을 만진다. 여자들은 넓은 집에서 화장실 다음으로 좁은 주방에 모였다. 네 명의 여자는 쉴 새 없이 손으로는 전을 부치고 입으로는 각자의 이야기를 버무리고 있다. 부엌이 좁아 거실 한쪽까지 자리 잡고 음식을 만드는 여자들은 시간이 없다면 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좁은 주방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온 집안으로 퍼지면 남자들을 시끄럽다는 듯 부엌을 힐끗거린다.  눈은 TV와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지만 귀는 혹시 자기 얘기를 하나 부엌에 가있다. 여자들은 하루 종일 좁은 곳에서 뜨거운 불과 기름 냄새로 연휴 신고식을 치른다.    

   

<좁은 식탁>

제사가 끝나고 식사 준비가 시작했다. 여자들이 또다시 분주해졌다. 제사상의 음식을 부엌으로 가져다가 먹을 만큼 덜어내고 다시 그릇에 담는다. 부엌에 넉넉히 준비된 전과 갈비, 잡채도 새 그릇에 담겨 식탁에 내놓는다. 네 가족이 모였으니 어른만 8명이다. 식탁이 좁은 탓에 우선 남자들이 먼저 식사를 한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모으고 과일을 깎고 설거지 거리를 정리하고 아이들의 식사를 돕는다. 남자들은 청주가 담긴 잔을 부딪치며 들이키고는 뜨뜻한 소고기 뭇국을 떠먹으며 하나같이 ‘캬하’ 하며 속을 달랜다.

밥을 먹으면서 눈치가 보인다. 부엌에 있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리를 비워줘야 식사를 할 수 있는데 마냥 이번 전은 잘됐네 갈비 양념을 잘 재웠네 음식을 평할 여유가 없다. 눈치 없이 혼자 남아 끝까지 먹는 한 남자는 한 여자가 주는 눈치로 겨우 일어난다. 그제야 여자들의 식사가 시작된다.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이지만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며 식사를 한다. 원래 음식 준비한 사람은 자신이 만든 음식에 손이 잘 안 가지만 다행히 전날 한 음식이라 남이 만든 음식처럼 먹는다. 여자들은 음식도 준비하고 제사상도 차렸는데 제일 늦게 음식을 먹는다. 남자들이 비켜줘야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준비란 준비는 다해놓고 푸대접을 받는 느낌에 밥 넘김이 편할 리 없다. 뭐 식탁이 넓어 다 함께 먹다한들 빈 그릇 채우고, 치우느라 불편한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명절에 잘 체하는 이유는 음식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먹을거리는 많은데 맘 편히 먹지 못해서다.    


<좁은 사회>

아직도 여자들은 명절이면 불편한 일이 많다. 친정보다는 시댁에 먼저 가야 하고 시댁의 음식 준비를 더 신경 써야 한다. 정작 자신들의 부모를 챙기는 건 뒷전이다.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틈이 나야 친정부모에게 생존을 알리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손목, 허리가 아프도록 제사 음식을 만들었지만 제사 때는 껴주지도 않고 밥도 제일 늦게 먹고 빠르게 치운다. 지친 몸으로 겨우 친정에 도착해서야 편하게 앉아본다. 소파에 누워 앉아 리모컨을 돌려가며 부모님 드시라고 사온 빵을 먼저 베어 먹고는 쇼핑몰 채널을 돌려가며 이거 사고 싶다 저거 어떠나며 엄마 아빠를 오라 가라 하며 자식 상팔자 노릇을 해본다.

명절엔 여자들을 위해서라도 음식도 간단하게 준비하고 직접 만들기 어려운 건 구입하자. 제사 때도 함께 조상님께 절을 하고 식사도 함께 먹고 술잔도 함께 부딪히자. 또 설거지는 남자들이 하고 정리도 함께 돕자. 그리고 설 명절엔 시댁에서, 추석에는 친정에서 보내면 또 얼마나 좋을까? 이런 말을 하면 여자들은 격하게 동의하면서도 없던 말로 하자며 손사래를 칠 거고 남자들은 어림 반 품 어치도 없는 소리라며 속 좁은 마음을 드러내겠지. 명절엔 이래저래 체할 이유가 많다. 그리고 어디 이런 일들이 명절에만 있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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