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이유 찾기

33개월 25일

by frarang
주아의 놀이방


'삑삑삑 삐삐 빅'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면 주아는 어김없이 문 앞에 서서 아빠를 반긴다, 그리고는 밑도 끝도 없이 선물을 사 왔냐고 묻는다. “무슨 맨날 선물이야. 너 선물 기다린 거야 아빠 기다린 거야?” 듣는 둥 마는 둥 이제는 놀이방에 가자며 보챈다. 퇴근 후 풍경이다.

“아빠 옷 갈아입고, 손 씻고 갈게. 조금만 기다려” 기다려 주기는커녕 빨리 오라며 짜증을 낸다. 주아에 끌려가는 나를 보며 아내는 “근데 주아, 아까 낮에 놀이방에 안 갔어. 무섭다고 그러던데.”

“진짜? 왜?”

‘벌써 혼자 있으면 무서운 걸 알 나인가? 뭐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놀이방에서 주아와 주차 놀이를 시작했다. 주아는 자동차 장난감을 너무 좋아한다. 외제차부터 국내 자동차까지 웬만한 자동차의 이름을 다 알 정도다. 심지어 유튜브도 자동차가 나오는 영상만 찾아본다. 주차 놀이로 시작해 경찰차 추격전 놀이가 끝나고 신호등 놀이가 시작될 때쯤 아내는 저녁거리로 부침개를 내왔다. 주아에게는 태블릿 pc로 유튜브를 틀어주고 난 거실에서 저녁을 먹기위해 놀이방을 나가려 하자 주아가 가지 말라고 떼를 쓴다.

“주아야, 아빠 맘마 먹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

그러자 주아는 “가지 마, 가지 마.” 또다시 울며 떼를 쓴다.

“알겠어, 알겠어. 울지 마! 그럼 주아 옆에서 먹을게” 우리 둘은 놀이방의 작은 탁자에 마주 앉아 한 명은 유튜브에, 한 명은 부침개에 빠져들었다.


부침개를 다 먹고 그릇을 주방으로 가져다 놓던 중갑자기 주아가 울기 시작했다.

“아앙, 무쩌워, 무쩌워”

주아가 누워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며 말했다.

“주아야? 왜 그래? 알겠어, 알겠어. 졸려? 그래 이제 자자.” 안아줘도 안기려 하지 않고 무섭다며 계속 운다. 더 크게 무서워 를 외치며 떼를 쓴다.

“주아야! 뭐가 무서워?”

이젠 아내도 나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기를 5분.

둘 다 한숨을 쉬며 주아를 바라본다. 나는 한번 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아를 안아주며 말했다.

“응 그래, 주아야 무서웠어? 뭐가 무서웠어? 응?”

주아는 품에 안기며 손으로 벽에 세워진 미끄럼틀을 가리킨다.

“아, 저게 무서웠어? 근데 저기엔 아무것도 없는데. 왜 무섭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다시 미끄럼틀 쪽을 가리킨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찰! 리! 채! 플! 린! 주아가 가리킨 건 창틀에 걸어 논 흑백 그림의 찰리 채플린이었다.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지난 주말 주아가 놀이방에서 그 그림을 무섭다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주아는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코밑에만 수염을 기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찰리 채플린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낮에도 혼자 놀이방에 가지 못했고 저녁에는 유튜브에 빠져있다 정신 차려고 보니 아빠는 사라지고 찰리 채플린과 단둘이 놀이방에 있던 게 무서웠던 것이다. 그리고 찰리 채플린과 독대하게 만든 아빠가 밉기도 하고.

주아가 보는 앞에서 찰리 채플린 그림을 치웠다. 이제 괜찮냐며 물어보자 주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그토록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이 눈앞에 있는데 만지지도 못하고, 아빠는 괜히 짜증내고... “주아야, 미안해. 아빠가 몰랐어.”


아이들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냥 애여서, 뭘 몰라서 떼쓰고, 울고, 바닥에 눕는 게 아니다. 다 그럴만한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다. 우리 어른들은 그 숨겨져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어른의 방법으로 밀어 붙이지 말고 왜 그런지 를 찾아야 한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이유를 찾아공감해주고, 이해시키고,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바른 방법을 알아가고 어른을 더 신뢰할 수 있다.


평소 아이가 보내는 작은 신호도 귀 담아 듣고 관찰해야 하며 내 감정보다는 아이의 감정을 먼저 헤아리는 어른다운 여유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알았다. 덩달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찰리 채플린은 늘 웃음만 주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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