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월 5일
주아가 평일 잠드는 시간은 9시 30분이 넘어서다. 이유는 아빠와 놀기 위함인데 아무리 퇴근을 빨리해도 집에 도착하면 8시 30분이다. 주아는 아빠가 오자마자 놀이방으로 가자고 한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손을 재빨리 씻으면 놀이가 시작한다. 함께하는 놀이는 자동차 놀이다. 간혹 퍼즐 맞추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자동차 퍼즐이다. 놀이방에 널브러진 수십 개의 자동차 장난감을 보면 힘들게 헤쳐온 퇴근길을 연상시켜 어질어질 하다.
주아는 주차 놀이부터 견인찬 놀이, 사고가 나면 출동하는 경찰차 놀이, 소방차 놀이까지 입으로 삐삐 소리를 내며 놀이에 빠진다. 아빠의 역할은 옆에 앉아 주아가 노는 것을 바라봐 주는 일, 원하는 자동차를 찾아주는 일, 경찰차나 소방차가 움직이면 출동하라 출동하라 큰소리로 효과음을 내는 일, 차가 막히면 어떡하지나 어디로 가지 하며 흥미를 부추기는 일이다. 그렇게 40분 정도를 놀고 나면 슬슬 잘 준비를 한다. 거실에 나와 있는 자동차는 놀이방으로 정리하고 양치와 손을 씻고 침대로 간다.
침대로 가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순순히 놀이를 그만두지 않기도 하지만 정리를 하지 않으려 한다. 처음에는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 노래를 부르며 재미있게 유도해보지만 이것도 안 통할 때가 많다. 그럴 땐 정리 안 하면 장난감을 안 사준다로 시작해서 싹 다 버린다로 끝날 때가 많다. 주아가 삐쳐서 울면 다시 달래서 거실만이라도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놀이방 정리는 엄두도 안 난다.
하루는 야근을 하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9시 40분쯤 되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니 주아가 혼자만 앉아있고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주아야 아빠 왔다.”
아빠를 보고도 반응이 없다. 뾰로통한 표정이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있다. 주아가 또 안 잔다고 떼를 썼나 보다. 그래서 화가 나 먼저 침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은 후 주아에게 갔다. ‘아빠 안아’ 하면서 주아를 안고는 침대로 갔다.
아내는 인기척이 없다.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다. 엄마와 떨어져 눕고는 주아에게 어린이집부터 시작해서 하루 일과를 물었다. 그러자 주아가 내 옆에 바짝 다가와 눕더니 이런 말을 했다.
“아빠. 주아는 자동차, 청소차에 버리는 친구랑 안 놀 거야.”
엥? 무슨 말이지? 어린이집에서 뭔 일이 있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주아야 무슨 말이야?”
“음. 자동차, 청소차에 버리는 친구랑 안 놀 거야. "
무슨 뜻인지 생각하던 그때 아내가 벌떡 일어나며 주아를 크게 부르고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야! 이주아! 너 엄마 보고하는 말이지?"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아내는 주아 보고 대단하다며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도 자동차 정리를 안 하길래 다 버린다고 했거든. 내일 아침에 청소차 오니까 청소차에 싹 다 버린다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속마음이 들킨 주아는 이불속으로 숨어버렸다. '주아 너어' 하면서 이불을 들추자 주아는 큰소리로 웃는다. 숨고 찾기를 몇 번하고 나니 어느 순간 아내도 화가 풀렸다. 주아가 웃자 엄마의 마음이 녹았고 아빠의 피로도 사라졌다. 엄마가 다시 웃자 아빠도 웃고 주아도 따라 웃는다. 침대를 이리저리 뒹굴더니 금방 잠들었다.
‘이젠 속상한 것도 말할 줄 알고… 이젠 다 컸구나.’
잠든 주아를 보니 흐뭇한 마음에 웃음이 번진다. 그러다 달콤한 미소가 새콤한 뒷맛을 낸다.
‘근데 요 녀석 봐라. 엄마를 친구로 바꿔서 말하는 거 보니 아주 응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