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나쁜 말

42개월 20일

by frarang


요즘 주아에게 제일 듣기 좋은 말은 잠들기 전 하는 말이다. 우리 집 침대는 퀸사이즈 매트를 두 개 붙인 크기의 패밀리 침대인데 잠들기 전 주아는 이리저리 뒹굴다 잠이 든다. 잠들기 전까지 엄마에게 가서 속닥속닥거리고는 내 쪽으로 굴러와 장난을 건다. 이런 걸 반복하다 잠이 드는데 잠들기 전 주아야 사랑해라고 달콤한 사랑 고백을 한다. 그러면 주아는 장난의 여운이 남았는지 표정 없는 말투로 아빠 안 사랑해라며 되받아친다. 요놈 하며 장난을 하고 사랑해와 안 사랑해를 몇 차례 주고받고 잠이 든다.


그런데 요즘은 잠들기 전 주아가 먼저 말한다. 조용해진 방에 가득 찬 잠 기운에 눌릴 때쯤 최면에 걸려 진짜 속마음을 이야기하듯 장난기 쏙 빼고 또박또박, 음률을 섞어 곡선을 그리며 말한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이 말을 들으면 잠이 확 깬다. 하루의 피곤이 사라지고 행복이 밀려온다. 정말 행복하다. 그새 잠든 주아에게 다가가 사랑해로 회답하며 볼에 뽀뽀를 한다. 정말이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는 사랑해 란 말은 정말 좋은 말이다. 매일매일 듣고 싶은 말이다.



“이놈의 시끼가...” , “야이 자식아...”

가끔 주아가 떼를 쓰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하는 말이다. 친근한 표현으로 화를 낼 때 하는 말인데 어느 날 주아가 주먹 쥔 손을 허리에 걸치고 말했다.


“이 새끼가”


아내와 나는 깜짝 놀랐다. 주아에게 다가가 그런 말 쓰면 안 된다고 나쁜 말이라고 일러주고 아빠도 앞으로 그런 말 안 쓰겠다고 약속했다.


주아가 엄마, 아빠 어깨너머로 본 오징어 게임 드라마에 푹 빠진 적이 있다. 일곱여덟 살 된 처제네 형아 누나를 만날 때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고 유튜브도 오징어 게임 관련된 영상만 찾아봤다. 그러다 꽂힌 말이 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한다.


“그만해, 그러다 다 죽어.”


아내와 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아에게 죽어라는 말은 나쁜 말이라고 다음부터 그런 말 쓰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주아에게 하면 안 될 나쁜 말들을 하나하나 알려주다 언젠가부터 입장이 바뀌었다. 장난스레 이 놈의 시끼라 말할 때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죽는 거 아냐 라며 등장인물에 몰입할 때 다가와서 말한다.

“새끼는 나쁜 말인데.”

“죽는 건 나쁜 말인데.”

자기에게 하지 말라던 말을 아빠가 쓰면 나쁜 말이라고 따끔하게 일러준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가. 좋은 말은 더하고 나쁜 말은 덜하고. 여하튼 주거니 받거니 놀랄 일이 많은 네 살의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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