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rang Feb 21. 2023

상상 더하기

56개월 10일


“상상 더하기 틀어줘.”

주아가 평일이고 주말이고 같은 노래를 듣는다. 듣는 것도 모자라 유튜브를 보며 율동까지 따라 한다. 발표회 준비를 위해서다. 주아의 첫 발표회 그러니까 재롱잔치로 불리는 행사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어린이집에서고 집에서고 열심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귀엽고 신기하고 웃기기까지 하다. 엄마, 아빠 앞에서 손짓 발짓 하며 연습하는 게 능청스럽다. 결국 엄마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일 텐데.


드디어 발표회 날. 주아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이곳을 다니기로 결정했을 때  둘러본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우리는 2층 강당으로 안내받았다. 발표회는 1부는 3,4세, 2부는 5세부터 7세의 공연으로 구성되었다. 강당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응원 팻말과 야광봉도 보였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총동원된  가족도 보였고 고급스러운 촬영 장비도 곳곳에서 보였다. 마치 유명 가수의 콘서트 분위기였다. 공연이 시작됐고 주아는 세 번 무대에 올랐다. 두 번은 율동 무대, 마지막은 단체 합창 무대였다. 발표회는 원장님의 인사말로 마무리됐다.   


발표회를 한다니까 손수건을 준비하란다. 무대에 선 아이를 보면 울컥한다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이었다. 어떤 감정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막상 발표회가 끝날 때까지 눈물은 없었다. 열기에 데워진 실내온도로 땀만 흐르고 잘하든 실수하든,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상관없이 뿜어대는 웃음과 환호만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응원 소리가 불쑥 뛰어오르고 지루하다 싶으면 사회자의 호응 유도에 박수와 함성이 다시 강당 온도를 높였다. 눈물이 날래야 날 수 없는, 눈물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축제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눈물이 웬 말인가.      


사실 눈물이 날 거라는 의미는 알고 있다. 내 품에만 있을 것 같던 아이가 어느새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한 것에 대한 감동, 멋진 무대를 보이기 위해 애쓴 노력, 걸음마를 뗀 게 얼마 전 같고 배변을 가린 지도 엊그제 같은데 훌쩍 커버린 걸 실감케 하는 세월의 무상함. 그땐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반복된 일상에 지쳐가며 하루, 하루를 버티던 시절. 힘들고 외로워 눈물을 토하던 시절. 잠들기 전 낮에 찍은 사진을 보며 잠시 웃다가도 내일을 거부하던 시절. 맞아, 그땐 어차피 내일이 없었어. 같은 하루를 찍어내던 시절이었잖아. 오늘보다 나은 내일보다는 무사한 하루, 제발 별일 없길 빌던 지극히 순간에만 머물던 시절이었지.


하지만 이젠 현재에 갇히는 날보다 미래를 상상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책을 척척 읽어내는 상상, 반듯한 글씨로 편지를 쓰는 상상, 씩씩하고 큰 소리로 인사하는 상상,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잘 노는 상상, 무대에서 연습한 걸 맘껏 뽐내는 상상. 그리고 몇 년, 몇십 년 후의 모습까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이처럼 아이의 성장은 부모를 현재에서 미래로 안내한다.      


주아의 내년 무대를 상상해 본다. ‘검정 고무신’ 만화 주제가에 맞춰 춤을 춘 여섯 살 형아들처럼 재밌는 무대가 될지, ‘사랑은 늘 도망가’ 가요에 맞춰 발레 무대를 선보인 일곱 살 형아들처럼 진지해서 더 웃긴 무대를 펼치게 될지, 상상에 상상을 더해본다.


그나저나 주아는 몸살이 나서 이틀간 몸져누웠다. 녀석도 발표회 준비가  꽤나 힘들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의 신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