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우킴 Nov 27. 2020

인종차별을 겪고 깨달은 것들

그 날은 오클랜드 기념일이었다. 오클랜드시에서는 시민들을 위하여 다양한 이벤트와 놀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각종 놀이기구가 줄지어 있었고, 야외에 설치한 무대 위에서 가수와 밴드가 신나게 공연하며 축제 분위기를 달구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많은 인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날이 아닌 만큼, 다양하고 색다른 놀이를 즐길 생각에 모두 들떠있는 표정이었다.


우리도 친구 가족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도착했다. 아빠들은 그날 일을 하느라 엄마들만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무엇을 먼저 탈까 고민하다 그나마 줄이 제일 짧은 놀이기구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줄을 서면서도 줄 밖을 왔다 갔다 하며 나름의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였다. 햇빛이 너무 강해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는 게 조금 힘들었을 뿐이었다.


우리 차례가 얼른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순간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들은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예민하게 발달된 나의 촉은 그 남자가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끼게 해 주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중국인들 정말 싫어. 자기네들 땅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왜 여기 와서 줄을 서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멍청이들.”

“말조심해, 저 사람들한테 다 들려.”

“괜찮아. 어차피 영어도 못 알아들을 텐데 뭐.”


그 남자는 주문을 외우듯 우리가 듣든 말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경멸과 무시의 톤이 가득했다. 순간 내적 갈등이 일어났다. 이 말을 듣고도 그냥 참을 것인가, 아니면 대놓고 한마디 할 것인가. 그냥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으면 그 남자는 계속 떠들어댈 테고 내가 반응하면 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옆에서 지켜보는 상황이라 나의 갈등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내 옆에 친구는 다행히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어떻게 대응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 몸을 획 돌리고 한마디 던졌다.


"Excuse me?"


젊은 백인 커플이었다. 내가 말을 걸기 시작하자, 여자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남자의 눈을 쳐다보았는데 눈꺼풀이 약간 풀려있었다. 살짝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해서 술을 먹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아까보다 더 큰소리로 중얼거리던 그 말들을 면전에 대고 외쳤다. 나도 더 무서울 게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인종차별과 비하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 심장은 이미 쿵쾅쿵쾅 요동치고 있었지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 남자에게 말했다.


"첫째,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

둘째, 우리는 지금 당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적이 없다.

셋째, 이렇게 대놓고 인종 차별하는 건 너희들 본모습인가?"


남자는 내 말을 듣고 화를 참지 못해 자리를 떴고, 여자 친구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역시 자리를 황급히 떠났다. 나는 최대한 이성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이미 내 마음 깊숙이 후벼 팠던 모멸감과 경멸감 때문에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다못해 얼굴이 시뻘게졌다. 친구와 아이들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모두 벌벌 떨고 있었다.


그냥 모른 척 있을까 싶었지만 그렇다면 그들은 누군가에게 똑같은 말로 피해와 상처를 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그동안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점잔을 뺀 듯 보였지만, 마음 한쪽에는 동양인에 대한 아니, 이민자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감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물론 모든 백인이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안다)


시기적으로 예민해질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중국 이민자들이 오클랜드 중심지로 대거 몰려들어 부동산 집값이 큰 폭으로 상승했고, 일부 뉴질랜드인들은 오클랜드 중심지에서 외곽으로 점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들도 피해를 보았으므로 부정적인 감정을 숨길 수 없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동양인이고 소수민족이라고 해서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받을 수 없고, 공공장소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참아야 한다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내기에는 나름의 후유증이 컸다. 해가 바뀌어도 오클랜드 기념일이 다가오면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그 커플을 잊을 수가 없었고, 우리 앞에선 웃고 있는 백인들을 보면 그들의 진짜 속마음이 어떤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이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고민이 되게 했던 일임은 분명했다. 아이들이 커서 이와 같은 인종차별을 겪을 때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하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친절하고 좋은 어른으로 크는 건 아니라고 일러두었다. 포용과 배려가 모자란 이기주의적 행동은 누구에게나 상처만 남길뿐이다.

이전 05화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