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동생이 나에게 늘 물어보던 게 있었다.
"언니, 주택에서 사니까 좋지 않아? 나는 아파트 말고 주택에서 살고 싶어. 잔디도 있고 나무도 있고.. 너무 평화로울 것 같아."
“글쎄.. 나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얼마나 피곤한데.. 직접 살아보면 아마 후회할걸?"
자연 친화적인 주거 공간이 부럽다고 말하는 동생의 환상을, 미안하지만 깨 주고 싶었다.
주택살이는 나에게 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기 때문이다. 마당에 잔디는 조금만 방치하면 무럭무럭 자라 있었고, 텃밭에 잡초를 부지런히 뽑지 않으면 애써 심어 놓은 채소들이 위협을 받을 터였다. 햇빛이 강한 여름에는 주기적으로 물을 주고, 지나가는 참새가 모종을 망가뜨리지는 않는지 수시로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종일 그것만 하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 나에게는 엄마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기 전까지 틈틈이 카펫이 깔린 바닥을 청소하기에도 이미 바쁜 몸이었다.
주택살이가 조금씩 불편해지게 된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시시때때로 나타나 우리를 괴롭히는 각종 벌레 때문이었다. 벼룩, 거미, 바퀴벌레, 개미, 심지어 쥐까지 나타나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 천장에는 왕거미 몇 마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바퀴벌레 크기는 또 얼마나 큼직한지 볼 때마다 깜짝 놀랐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몸을 자꾸 긁어서 살펴보았더니 피부에 붉은 반점이 보였다. 뉴질랜드에서 벼룩에게 물리는 일이 아주 흔하다고 들었는데, 왠지 벼룩인 것 같았다. 나는 방안에 있는 모든 침구류를 걷어내 뜨거운 물에 세탁하고 햇볕에 말렸다. 그러고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마트로 달려가 마치 폭탄을 연상시키는 벼룩 퇴치제를 사 와서 침대 위에다 터트렸다.
이번에는 벌들이 현관 앞에 벌집을 만들어 수시로 드나드는 것을 목격했다. 벌집을 건드리는 게 위험하기도 해서 며칠 놔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벌집 사이즈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커지는 벌집만큼 수많은 벌이 그 안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놀다가 벌에 쏘일까 봐 어쩔 수 없이 제거해야만 했다. 무슨 수를 써볼까 궁리하다 텃밭에 물을 뿌릴 때 쓰는 호수를 가져왔다. ‘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 나는 거센 물줄기로 벌집을 겨냥해보았지만, 견고한 벌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 집이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아닌 위협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주택에 살면서 제발 나타나지 않았으면 했던 불청객은 쥐였다. 이러한 나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쥐 한 마리가 나타나 순식간에 집 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남편을 불렀다.
"으악! 여보 쥐가 나타났어!"
"뭐? 당신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니야 분명 쥐였어. 잽싸게 도망가는 거 봤단 말이야!"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빠져 어찌할 줄을 모르는 나와 달리 이성적인 남편은 여기저기 기웃하더니 차분하게 쥐덫을 설치해 주었다. 이 일을 겪은 후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드는 옆집 고양이가 제발 자주 놀러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모든 일을 우리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전문 살충 업체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주택에서 사는 것이 보편적이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살아야 했지만, 살충을 위하여 돈까지 지불해야 하니 억울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집뿐만 아니라 주택에 사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충이었다.
물론 주택에서 생활하면 좋은 점이 있다. 바쁜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지향할 수 있고, 매일 마당에서 피어오르는 흙냄새와 풀냄새를 맡으며 자연이 주는 기쁨을 얼마든지 만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강심장이 아니었을뿐더러, 매일 다양한 생명체와 전투를 치를 만큼 강한 체력을 소유하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