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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Jun 08. 2020

내가 텃밭을 가꿀 줄이야

주방에 서서 설거지할 때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가 너머 뒷마당으로 향한다. 앞마당에 깔린 잔디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정돈이 잘 되어있지만 뒷마당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잡지에서 보던 외국 집의 정원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뭐가 잘못된 걸까?’ 뉴질랜드인들의 주특기가 정원 가꾸기라고 어디서 듣긴 했는데 다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종류별로 심은 꽃과 잘 다듬어진 나무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까.


방치되어있던 뒷마당에 사부작사부작 변화를 주고 싶었다. 집주인이 정기적으로 부동산 직원을 보내 세입자가 집을 잘 관리하고 있고 소유물에 피해를 입히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고 있던 중이었다. 어차피 소심한 마음에 어떤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어느 날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상추, 깻잎, 토마토 등 작은 모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타지에서도 한국 채소를 직접 키우며 먹을 수 있다니! 세상이 정말 좋아졌구나. 그래, 이 참에 텃밭을 만들어보자. 뒷마당에 심으면 아주 좋겠어!'


따로 공간을 만들 필요가 없고 아이들에게도 채소를 직접 키워보게 하는 좋은 기회다 싶어 모종 몇 개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종을 사 왔으니 장갑을 끼고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땅을 갈기 전에 잡초를 뽑아야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방치된 뿌리가 이미 땅속 깊이 자리를 잡아서였는지 아무리 힘을 세게 주어도 뽑히지 않았다. 땅속을 파고 또 파도 억센 뿌리는 좀처럼 없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 잡초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걸까.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뿌리는 계속 자랄 테고…이 귀하고 귀한 모종들의 생명도 위협을 받을 텐데!'


시간이 지나 첫 번째 난관인 잡초가 어느 정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다음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의 어마어마한 몸통의 굵기와 길이, 잡초의 강인한 생명력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을 지렁이 부대에 결국 내 의지와 체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비 온 다음 날 땅에서 마주치던 지렁이는 정말 귀여운 수준이었던 것이다. 현기증이 오는 것 같고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이제 포기해야겠다고 차마 말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여태껏 들인 시간과 에너지를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웠다. 이런저런 잡념은 뒤로한 채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전해보기로 했다. 잡초를 제거한 곳에 흙에 비료를 섞고 모종을 줄지어 심었다. 그리고 뜨거운 햇빛, 시기적절하게 오는 빗물과 선선한 바람이 튼튼하게 키워주길 바랐다.


'우리의 애정 어린 관심도 함께 더해주면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야!'


간절한 소망이 통한 걸까. 시간이 지나자 정말 많이 애쓰지 않아도 손수 심은 모종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무럭무럭 자라났다.


방치된 뒷마당에 철마다 예쁜 꽃들이 만개하는 것도 물론 좋았겠지만 땅 속 영양으로 가득 채운 채소를 수확할 수 있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노동의 대가를 싱싱한 먹거리로 보상받는 일은 생각보다 가치 있고 근사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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