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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Sep 21. 2020

남이 타주는 커피가 최고야

나의 라테아트 도전기

대학 시절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스타벅스에 갔다. 커피를 한 번도 마신 적이 없던 나는 어떤 커피를 주문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친구와 똑같은 캐러멜 마끼아또 한 잔을 주문했다. 커피는 원래 쓴 맛이 날줄 알았는데 웬걸. 입 안을 감도는 부드럽고 달콤한 캐러멜향에 심취해 한 모금 두 모금 아껴 마셨다. 그 후론 커피는 무조건 달아야 맛있다고 생각했다.

달달한 커피가 아니면 다른 커피를 시도해보는 것조차 꺼려했던 내가 전혀 달지도 않은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플랫화이트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Espresso Workshop 카페 바리스타가 우유를 스팀 하는 중
뉴질랜드 플랫화이트의 역사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섬 최남단의 위치한 웰링턴의 바리스타인 프레이져 맥킨(Fraser McInn) 은 저지방 우유로 카푸치노를 만들다가 우유 거품을 충분히 만들지 못해서 실패한 커피에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플랫 화이트(Flat white)라는 이름이다. 라테에는 스팀 우유 위에 두꺼운 거품이 추가로 들어가지만, 플랫화이트는 라테보다 양이 조금 적다.  커피잔 1/3은 에스프레소가 들어가고 나머지 2/3 정도는 우유가 들어간다. 이때 우유는 카푸치노처럼 풍성한 거품이 아닌 부드럽고 평평한(그래서 이름에 flat이 들어간다), 벨벳 크림 같은 느낌의 우유를 스팀 해서 넣는다.

출처: https://www.nzstory.govt.nz


원재료가 좋으면 맛이 좋을 수밖에. 낙농업 국가 뉴질랜드의 신선한 우유는 고소한 에스프레소와 어우러져 깊고 진한 풍미의 플랫화이트로 다시 태어났다. 맛이 좋은 이유도 있었지만, 나는 커피 위에 그려진 라테아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근사한 라테아트를 뽐내는 플랫화이트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형태가 조금씩 일그러질 때면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 다 식은 커피를 마신 적도 있었지만 차갑게 식은 커피의 맛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플랫화이트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동네 커뮤니티에서 라테아트 강습을 한다는 정보를 찾아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바리스타처럼 능수능란하게 라테아트를 만드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수업을 등록했다. 한번 시도해보고 괜찮다면, 정식으로 커피도 배우고 바리스타의 길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부푼 기대감으로 첫 레슨을 시작하는데, 첫 관문부터 삐거덕거렸다. 먼저 우유를 적정 온도까지 데우는 작업이 어려웠다. 스팀피처 안에 들어간 우유가 너무 뜨거워도 안 되고 미지근해도 안 되고 적정온도에 맞춰 데우는데 그 온도를 손바닥으로 감지해야 했다. 몇 초만 방심해도 바로 뜨거워지는 그 순간이 두려워 온도 조절을 계속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스팀우유가 다 만들어지면 에스프레소가 담긴 커피잔에 일정한 속도와 양을 조절해서 천천히 부어야 한다. 이때 우유를 붓는 오른쪽 손목은 힘을 빼야 하고, 커피잔을 든 왼손은 살짝 기울여 쏟아지는 우유를 부드럽게 받아내야 한다.  커피잔에 우유가 다 채워지기 전에 라테아트 모양을 잡기 시작해야 하는데 난이도가 제일 낮은 하트 모양도 제대로 완성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하고 연습하면 어느 정도 감도 생기고 자신감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녹록지 않았다.

나에게 바리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눈으로 보는 건 쉬웠지만, 직접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커피는 감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정교함과 섬세함을 연결하며 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커피였다. 그리고 그 최고의 맛을 선사하기 위해 바리스타들은 수많은 경험과 실패를 거듭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래, 뭐니 뭐니 해도 남이 타주는 커피가 최고야!


끝내 마스터하지 못한 라테아트를 볼 때마다 나의 패기 있던 도전이 생각나곤 한다. 그때 바리스타가 됐으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Bestie Cafe 바리스타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코에 훅 들어오는 진하고 고소한 커피 향, 달달한 디저트 냄새, 커피잔과 티스푼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 바리스타가 피처를 탕탕 부딪히며 내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모든 것이 뒤섞인 그 공기 안에 있으면 외롭지 않았다. 다소 심심하고 단순한 뉴질랜드 생활에서 적막함을 깨고 싶을 때 나는 카페로 급히 발길을 옮겼다. 오늘은 어떤 라테아트를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하고 기다리던 그 시간. 기다림 끝에 받아 본 플랫화이트를 호호 불며 라테아트를 감상하는 그 시간은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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