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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Nov 09. 2020

5번째 생일을 축하해

뉴질랜드에서는 아이가 만 5세가 되면 다니던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입학한다. 딸아이는 곧 만 5세가 될 예정이었다. 유치원에 들어간 지 6개월도 안되었는데 벌써 학교 입학이라니. 시기적으로 많이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 입학하면 교복도 입어야 하고 정해진 규칙과 규율을 따라야 하는데, 엄마로서는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좀 더 긴 시간 동안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자유롭게 놀았으면 했다. 영어도 잘 못하는 아이가 또 다른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유치원 졸업식이 다가왔다. 아이들마다 생일이 다르고 졸업을 하는 시기가 틀리다 보니 어떤 날은 매일 졸업식이 있는 날도 있었다. 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나눠 줄 컵케이크를 만드느라 조금 늦은 시간에 유치원에 도착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딸을 발견했다. 딸은 미리 맞춘 것 같은 딱 맞는 검은색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입고 있었다. 선생님은 딸아이 옆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계셨다. 딸은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었고, 친구들은 옹기종이 매트에 모여 앉아 선생님과 졸업가운을 입은 딸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고 최대한 발자국 소리를 줄여 교실 뒤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선생님의 두 손에는 A4 사이즈 클리어 파일 한 권이 들려 있었다. 클리어 파일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넘기며 파일 안에 담긴 글과 사진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계셨다. 마치 프레젠테이션을 보는듯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처음 들어오고 나서 무엇을 그렸고, 무엇을 하며 놀았으며, 또 어떤 활동을 제일 좋아했는지 친구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어떤 날은 딸이 제일 좋아하는 디즈니 소피아 공주 드레스를 입고 유치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 선생님이 직접 찍어 준 사진도 들어 있었다. 아이의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어주신 선생님의 마음에 감동받은 순간이었다.


선생님이 열심히 사진을 설명하는 동안 딸아이는 까르르 웃기도 하고 부끄러운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프레젠테이션이 다 끝난 후 선생님은 클리어 파일을 고이 접어 졸업장과 함께 딸아이에게 전달했다. 딸아이의 모든 것이 기록된 특별한 졸업식 선물이었다. 친구들은 힘껏 손뼉을 쳐 주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기다리던 제일 즐거운 시간이 다가왔다. 다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아 컵케이크를 나눠 먹을 시간이다. 빨간색 체크무늬 테이블보가 놓인 테이블 위에 컵케이크를 가지런히 놓고, 초 다섯 개를 천천히 꽂았다. 초 위에 불을 붙이자마자 선생님과 친구들의 힘찬 노래가 흘러 퍼졌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dear Sofia~

Happy birthday to you~
Hip hip hooray! Hip hip hooray!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간식타임이라 그런지, 딸아이도 아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유치원에서 제일 친했던 친구도 옆자리에 앉아 작은 두 손에 컵케이크를 들고선 못내 아쉬운 표정을 보였다. 둘은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느라 분주해 보였다. 친구는 생일이 늦어서 조금 더 있다가 졸업할 예정이었다. 사는 동네는 서로 달라서 다른 학교로 갈 계획이라 어쩌면 정말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짠해졌다.



학교에 가서도 종종 놀러 오라고 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뒤로한 채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정문을 나섰다. 영어를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던 아이의 지난 6개월이라는 시간을 되돌려보았다. 아이가 그동안 표현은 잘 안 했지만, 엄마도 직접 헤아리지 못한 힘겨운 시간이 분명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언어의 장벽 앞에서 본인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혼자 고민했을 테고,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보다 그들의 행동에 더 눈여겨 관찰했을 테다. 아이는 낯선 땅에서 생면부지인 선생님과 친구들 틈 속에서 천천히 혼자의 시간을 버티며, 친구를 사귀고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에겐 학교 입학이라는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너무 겁먹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지난 6개월을 무사히 견뎌냈으니 앞으로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갈 거라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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