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북섬 오클랜드의 Albany(알바니)라는 동네에 살았다. 우리가 사는 동네의 장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바닷가와 가까이 있다는 점이었다. 집에서 5분만 운전하면 Browns Bay(브라운스 베이) 바닷가가 나왔다. 남편과 아이들이 각자 회사와 학교에 가고 나면 나는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바닷가로 떠났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리면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닷가에는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견주들과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산책을 시작하기 전에 귀에다 이어폰을 끼고 스트레칭을 했다.
견주들은 반려견의 목줄을 풀고 바닷가에 공을 던졌다. 반려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다에 뛰어 들어가 공을 물고 다시 주인에게 달려왔다. 그들 사이로 걷다 보면 한 덩치 하는 반려견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그들에게 방해꾼이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으려 했다. 얼마 전에 한 반려견이 어린아이를 공격하고 물었던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어서 그 날 이후로는 커다란 개 근처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물리지 않을 이유는 없었기에. 그냥 운이 안 좋으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졸이며 산책하던 어느 날 바닷가 옆에 트래킹 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딜 가도 인적이 드물어서 실제로 사람이 다니는 곳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길을 따라 들어가면 어떤 곳으로 이어질지 궁금해서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무작정 걷다 보니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면 우선 안심이 되었다. 그들은 길을 걷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Hello’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나도 똑같이 ‘Hello’라고 인사를 건넸다.
처음 발견한 길은 보면 볼수록 매력 있었다. 꽃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걸으면서 넓은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이 곳은 힐링의 장소였다. 키가 작은 담벼락 너머로 누군가의 집 뒷마당도 보였다. 잔디 위에는 직접 만들어 놓은 듯한 나무 벤치가 놓여있고,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읽는 집주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영화 속에 나올 법한 마법의 정원 같았다. 남의 집을 공짜로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트래킹길은 평지가 아니었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숨이 너무 차서 잠시 쉬어가야 했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맑은 날에 바다는 하늘과 경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푸른빛을 띠었고,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흐린 날에는 잿빛으로 변하곤 했다.
걷기 시작할 때는 분명 날씨가 좋았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질 때가 있었다. 뉴질랜드의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무방비 상태에서 비를 맞기가 쉽다. 몇 차례 비를 쫄딱 맞은 후에야 방수 점퍼를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끔은 매번 걸어 다니던 트래킹 길이 만조 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다. 물이 점점 차오른 길을 발견하면 산책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다. 자연의 섭리를 보고 있노라면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작게 느껴져 숙연해졌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나는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는 그냥 힘없는 작은 존재에 불과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바다 빛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속 여러 가지 감정을 닮은 듯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데도 이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누군가가 생각났다. 저 멀리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함께 떠들고 웃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졌다. ‘지금쯤 그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전화를 한번 해볼까? 아니야 모두 바쁜 시간일 텐데, 그냥 말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급해져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던 길을 되돌아가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으므로.
나는 매일 혼자 바닷가에서 걸으며 다리에 힘을 길렀다. 다리의 근육이 날마다 튼튼해지는 것만큼 마음의 근육도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 무엇보다 이 시간만큼은 내 감정과 생각을 가장 진솔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혼자만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생겨서였을까. 바닷가를 떠날 채비를 하며 별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내일 또 오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