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딸의 표정을 살피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날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대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딸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 앞으로 나타났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입은 앞으로 쭉 내밀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소피아, 왜 그래?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
"엄마한테 말해봐.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친구들하고 무슨 일 있었니?"
"오늘 친구들하고 놀다가 다 함께 카트휠 했는데, 나만 빼고 친구들은 다 하더라고. 그래서 속상했어."
"카트휠? 그게 뭔데?"
"이렇게 하는 거야."
딸은 가방을 툭 내려놓더니 바닥에 두 팔을 딛고 쭉 편 상태로 두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보아하니 카트휠(cartwheel)은 옆으로 재주넘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그걸 다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해?"
"몰라. 나도 너무 하고 싶어."
딸은 울먹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어린 시절 체육 시간에 배운 고난도 기술은 기껏해야 뜀틀 넘기였는데, 무슨 수로 옆으로 재주넘기를 가르쳐줘야 한단 말인가.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바닷가를 놀이터 삼아 수영은 물론이고 육상에서 못하는 운동이 없다고 들었긴 했지만, 옆으로 재주넘기를 하면서 논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딸은 아무리 봐도 엄마가 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했다. 매일 두 팔을 쭉 펴고 두 다리를 힘껏 뻗어 벽에다 붙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기도 하고, 머리를 바닥에 쿵 부딪히기도 했다. 아프고 지칠 법도 했지만, 마음에 드는 물구나무 자세가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본인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무리 안에서 경쟁심을 기르는 것 같다. 누가 운동을 더 잘하고 누가 더 멋있어 보이는지 서로 의식하면서. 어쩌면 그런 경쟁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도전하며 본인도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 경쟁은 조롱과 비판이 없는 건전한 경쟁환경에서 비롯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친구들은 아이가 동작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다리를 붙잡아주기도 하고 응원해 주었다고 한다. 긍정의 힘을 받은 아이는 날마다 새로운 목표를 세웠고 근력을 키웠다. 가끔 아이의 노력이 가련해 보여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이의 성향상 모른척해주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최대한 말을 아꼈다.
딸은 꾸준한 도전과 노력 끝에 보상을 받았다. 몇 달을 쉬지 않고 노력한 끝에 옆으로 재주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도 성취감에 기쁜 나머지 동작이 완성되던 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엄마! 나 이제 카트휠 할 수 있어!
아이가 성장하면서 앞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아이는 몇십 번 아니 몇백 번의 노력 끝에 카트휠을 완성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장애물도 분명 만날 것이다. 삶은 늘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그럼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전하지 않으면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뜨거운 열정과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근사한 일이니까. 도전을 멈추지 않도록 열심히 응원하는 일은 엄마인 나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