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온라인 맘 카페에 가입하였다. 요즘에는 해외에서 사는 사람들끼리도 정보 공유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카페에 가입해두면 필요한 정보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친구를 구합니다.’라는 꽤 노골적인 제목과 글을 하나 남겼다.
“전 서른여섯 살이고 아이는 두 명이예요, 곧 오클랜드로 이사 갑니다. 저랑 친구 하실 분 계실까요?”
글을 올리고 나서 누가 이런 글에 댓글을 달아줄까, 아무도 관심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댓글을 남겼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이사 와서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엄마들도 서로 나이가 비슷하다고 했다.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오클랜드에 도착하면 꼭 연락한다고 하고 연락처를 받게 되었다. 친절하게 댓글을 남겨준 엄마가 어떤 사람일지 너무 궁금했고, 벌써 친구가 한 명 생긴 거 같아 내심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그동안 온라인에서 연락처 주고받으면서 만난 친구는 아직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카페에 글을 올렸나 싶었고 후회도 되면서 마음이 갈팡질팡 혼란스러웠다.
‘한번 만났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나처럼 아이 키우는 엄마인데 뭐. 괜찮을 거야 ’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이삿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일상도 차차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남편은 새로운 일로 항상 바빴고 아이들은 낯선 유치원에 적응 중이었다. 모두가 집을 나서고 혼자 남겨진 날에는 가끔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 다짜고짜 옆집 초인종을 누르고, ‘저랑 같이 차 한잔하실래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누군가를 만나 수다도 떨고 싶고, 같이 밥도 먹고, 정말 ‘친구’ 같은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맘 카페에 올린 글에 댓글을 달아준 엄마에게 연락해보기로 하고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번호를 찾아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다행히 그분한테도 바로 연락이 왔고,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나갔다. 긴 회색 카디건을 입은 한 동양인 엄마가 유모차를 잡고 서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먼저 말을 걸기도 전에 얼마나 떨렸는지.. 나는 용기 내어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였고 그 친구도 웃으면서 인사해 주었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가서 대화를 마주 이어 나갔다. 그분은 딸 둘의 엄마였고 첫째 딸의 이름은 내 동생과 같은 이름이었다. 아는 이름이 나오니 왠지 친근감이 느껴졌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카페 안이었지만 커피 한잔 속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왠지 이 친구와 계속 만남을 이어갈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소개팅하고 헤어지면서 느껴지는 설렘과 기대 같은 감정이랄까.
"우리 집에서 함께 저녁 식사할래요?"
며칠 후 친구가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하였다. 뉴질랜드에서 다른 사람 집에 초대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두 가족은 금방 친해지게 되었고 여행도 교회도 같이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그곳에 살면서 우리는 사람 관계에 대하여 많이 듣고 또 경험했다. 특히 타지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지만 그만큼 관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국적 사람들이라고 해서 더 돈독해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어떤 명분으로 만났더라도 이미 맺어진 관계를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느꼈다.
타지에서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몇 프로나 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난 굉장히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대하여 아주 고마워했다. 먼저 손 내밀어준 친구 덕분에 우리 가족은 연고 없는 낯선 나라에서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
친구는 아직 뉴질랜드에 살고 있다. 그곳에서 계속 삶을 살아갈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