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직장 생활할 때 우리 집은 잠실에 있었다. 그때는 9호선이 생기기 한참 전이라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가는 출근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2호선을 타다가 여의도역이 있는 5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왕십리행을 탈 것인가 영등포구청행을 탈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어야 했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지만 몇 분이라도 출근시간을 단축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침을 거르는 일이 많았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시간과 지하철 타는 시간을 모두 고려하여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해야 했다. 전날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잠깐 눈만 붙이고 일어나야 했는데 잠이 많은 나는 선잠을 잔 것 같은 느낌이 싫었다. 잠을 깨기 위해 찬물로 대충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한때 유행했던 비비크림은 꼭 챙겨 발랐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출근하다 회사에서 구두로 갈아 신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때는 왜 그런 융통성도 없었는지. 아침에 부은 발로 구두를 신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이미 많은 사람으로 빼곡한 지하철 칸에 몸을 욱여넣었다.
비몽사몽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거쳐 목적지 여의도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우르르 내렸다. 그리고 일제히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를 내며 출구 쪽으로 향했다. 마침내 빛이 들어오는 출구 쪽으로 걸어가면, 배고픈 직장인들의 후각을 자극하는 여러 종류의 음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출근 전쟁을 치르느라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 나. 텅 빈속은 나의 신경을 점점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로 바로 회사에 들어가 점심시간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딱 십 분의 여유가 있었다. 이미 나의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냄새에 이끌려 움직이고 있었다. 김밥, 어묵, 삶은 달걀 그리고 길거리 토스트 중 무엇을 먹을지 잠시 고민했다. 미처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하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허기를 채워 주는 출구 주변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메뉴는 길거리 토스트였다. 갓 구워져 나온 따뜻한 토스트를 은박지로 감싸 한입 베어 먹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마가린 향을 솔솔 풍기는 부드럽고 고소한 식빵 사이에 따끈하고 포근한 달걀이 케첩 하고 설탕과 어우러져 빈속을 달래주곤 했다.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토스트. 회사에 들어가기 직전에 내 몸에 연료를 채우듯 비장한 각오와 함께 소중히 먹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오랜 세월 동안 터 잡은 여의도역 토스트 맛집을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집에 식빵이 있으면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흉내를 내본다. 다른 채소는 몰라도 양배추를 꼭 넣는 것을 추천한다.
식빵 2장, 달걀 2개, 당근 1/4개, 양파 1/4개, 양배추 1장, 다진 파 조금, 소금, 후추, 설탕, 케첩, 버터
① 달걀을 풀어 소금과 후추를 뿌린다. 양배추는 채 썰고 당근, 파, 양파는 잘게 다져 달걀과 골고루 섞어준다.
② 프라이팬에 달걀과 햄을 구워준다. 달걀을 식빵 크기에 맞춰 노릇하게 굽는다.
③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식빵을 노릇하게 구워 준다.
④ 식빵 위에 달걀, 치즈, 햄 순으로 올려 설탕, 케첩을 뿌리고 빵으로 덮는다.
⑤ 반으로 잘라 맛있게 먹는다.
이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여유를 부리며 먹을 수 있는 토스트는 어느새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렸다. 매일 아침 뾰족구두를 신고 출근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될 중년의 나이가 돼버렸지만, 모든 게 서툴고 어리숙했던 나의 20대 직장인 시절이 그립긴 하다.
매일 아침 회사에 들어서면, 날 반겨주는 건 오직 재미없고 지루한 업무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절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까닭은 여의도에는 직장인의 허한 속을 달래주는 따뜻한 음식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