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책상 앞에 앉았는데 엄마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한다

깊은 빡침에 대한 정신분석적 이해

by 프로디언슬립


힘겹게 책상에 앉았어요. 시험은 코앞이고 이제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알아도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막상 책상에 앉아도 자꾸 인터넷만 뒤적이게 돼요.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만은 없죠. 어려운 결심 끝에 드디어 책을 펼쳐요.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귀찮음을 느끼고 막 책으로 눈을 돌리려는 찰나, 밖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요. “너 낼모레가 시험이라며. 공부는 언제 할 거니?”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디선가 깊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요. 엄마가 틀린 말 하신 건 아니죠. 그동안 놀았으니 그런 말 할 만해요. 하지만 끓어오르는 짜증을 견디기는 어려워요. 공부할 맛이 완전히 사라져요. 내 기분을 망친 엄마에게 버럭 화를 낼 수밖에 없어요. 나중에 후회할 걸 알지만요.



정신분석적으로 보자면 이건 분리·부정·투사의 방어기제가 복잡하게 작동한 결과예요. 그 안에는 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치열한 정신적 몸부림이 들어 있고요. 나는 종일 ‘공부하라’고 채찍질하는 나와 ‘공부하기 싫은 나’로 나뉘어, 내 안에서 전쟁 중이었어요. 나를 원망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혼내기도 하고, 눈앞에 닥친 현실에 절망하기도 하며, 다양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어요. 그런데 마침 엄마가 “공부는 언제 할 거니?”라고 말을 보태요.


이 순간 채찍질은 온전히 엄마의 것이 돼요. 공부하라고 채찍질하던 나는 더 이상 나에게 없다고 부정돼요. 그리고 내가 아닌 것으로 분리되어, 온전히 엄마의 목소리로 투사돼요. 나는 이제 눈앞의 현실을 해결해야 하는 고통을 겪기만 하는 나에요. 나는 원래부터 공부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내 맘을 몰라주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며 나를 의심하고, 그래서 억지로 공부하라고 강요해요. 이제 나는 온전히 구박당하는 사람이에요. 엄마의 믿음을 얻지 못해 슬프고,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처지에서 무력감을 느껴요. 그래서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화를 내야 해요.


나의 분노는 엄마가 강요하기 때문에 당연한 거예요. 공부하라는 채찍질이 내 안에 있을 때, 그것이 ‘나’이기 때문에 나는 저항할 수도 없고 화도 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나는 오해하고 강요하고 구박하는 엄마로부터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해요. 엄마가 나를 구박하지 못하도록, 나는 화를 내야 돼요. 채찍질은 내 안의 갈등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침범으로 바뀌었어요. 내가 공부하려고 했던 것, 스스로도 나 자신에게 내적인 채찍질을 하고 있었던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그 선 넘는 침범으로부터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해야 해요. 나는 화를 낼 수 있고 내야 해요. 짜증의 대상은 내 안의 채찍질이 아니라 엄마의 잔소리예요.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은 비겁하거나 가식적인 게 아니에요. 잔인한 현실과 엄마의 잔소리, 그리고 내적 갈등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 더 가깝죠. 하지만 어느 정도 대가가 따르긴 하죠.


첫째, 내적 갈등에 영원히 고통받을 수 있어요. 채찍질하는 목소리는 사라진 게 아니에요. 그저 보이지 않게 된 것뿐이죠. 엄마와 싸우고 나서 혼자 남았을 때, 그 목소리는 다시 돌아와요. “나는 왜 이러지? 시험은 코앞인데...” 그리고 다시 나 자신을 원망하고, 혼내고, 절망하는 내적 갈등이 시작돼요.


둘째, 나의 힘겨운 노력이 무산돼요. 힘겹게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을 뒤적이다가도, 굳은 결심을 하고, 드디어 책을 펼쳤던 그 순간들. 그건 당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성취였어요. 완벽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것이었죠. 하지만 투사가 일어나면서 그 모든 게 없던 일이 되어버렸어요. “나는 원래 공부하려고 했어.”라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조차 방어의 일부가 되어버린 거예요.


셋째, 그래서 자율성을 잃게 돼요. 역설적이게도 침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던 방어가 오히려 자율성을 빼앗아요. 이제 당신의 행동은 ‘엄마에 대한 반응’이 되었어요. 스스로 책을 펼쳤던 당신은 사라지고, 엄마 때문에 공부할 맛이 사라진 피해자만 남았죠. 엄마의 말에 반대로 행동하는 것도 여전히 엄마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의미예요.


방어를 해도 안되고 안해도 안되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내면의 두 목소리를 동시에 인정해야죠. 빨리 공부하라고 채찍질하는 것도 그게 힘들어서 계속 미루는 것도 모두 나예요. 그걸 스스로 한심하고 게으르다고만 판단해 버리면 고통만 더 커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한다며 어떻게든 부여잡고 있는 안쓰럽고 대견한 스스로도 좀 인정해 줘야죠. 힘겹게 책상에 앉은 것, 인터넷을 뒤적이다가도 책을 펼친 것. 이건 작은 일이 아니에요. 엄청난 노력이죠. 엄마의 말이 그 노력을 무효화하게 두지 마세요. “나는 지금 하고 있었어. 완벽하지 않았지만, 해내고 있었어.” 스스로에게 말해줘요. 엄마가 뭐라고 하든, 당신은 노력하고 있었어요. 그 순간을 지켜내는 게 중요해요.


물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가혹한 나를 외면하라는 건 아니에요. 그것 역시 나 자신이니까요. 나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한다는 건, 그만큼 나 역시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이 그 길밖에는 없다는 걸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스스로를 지나치게 다그치거나 게으르고 한심하다고까지 몰아붙이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요. 조금은 수위를 조절하는 게 좋다는 거죠.


심리적 방어기제는 모두,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정신적 몸부림이에요. 견딜 수 없는 내적 전쟁을 외부 전쟁으로 바꿔서 잠시나마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죠. 하지만 이 방어들은 당신이 해내고 있던 것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요. 힘겹게 책상에 앉았던 것, 굳은 결심을 했던 것, 책을 펼쳤던 것. 이 모든 순간들이 엄마의 한마디로 사라져버렸죠.


진짜 문제는 엄마가 아니에요. 엄마는 그저 방아쇠를 당긴 것뿐이에요. 진짜 전쟁은 이미 당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어요. 채찍질하는 나와 고통받는 나 사이에서요. 두 목소리를 동시에 듣는 건 정말 고통스러워요. 나를 원망하는 나, 나를 혼내는 나를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온전한 당신이에요. 그 갈등을 견디는 힘이 생기면, 엄마가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당신 안에서 그 싸움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비로소 진짜 자유가 생길 거예요. 엄마에게 화내는 자유가 아니라, 내 안의 두 목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자유 말이에요.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온전히 나의 것인 자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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