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처럼 커리어에는 분명히 이력서만 남는다. 따라서 좋은 이력서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 묘사하는 '이력서형 커리어'는 명문대, 대기업 등의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이후가 걱정되는 커리어를 의미한다. 소위 말하는 물경력과도 연결되는 표현이다.
이전 글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계속하려 할 때 그것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취약성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를 커리어에 적용하면 커리어에 있어 이후가 걱정된다는 것은 내가 강한 취약성을 가졌거나, 원래는 치명적이지 않던 취약성이 시대가 변하면서 치명적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시 정리하자.
'이력서형 커리어'란? 이력상으로는 화려하지만 이어가기에 치명적인 취약성을 가진 커리어를 의미한다.
이력서형 커리어의 문제점
이력서형 커리어는 처음에는 탄탄해 보일 수 있다. 명문대 졸업, 대기업 근무, 화려한 수상 경력 등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이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커리어는 종종 실제 역량과는 무관하게 겉모습만을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엘리트 코스'라고 하는 커리어 중에도 '이력서형 커리어'인 경우가 있다. 이력서형 커리어의 특징은 무엇일까?
1. 높은 기대치와 현실의 괴리
우선 이들은 화려한 이력으로 인해 스스로의 기대치가 높다. 대기업 등 큰 조직에서는 시스템에 의해 업무가 돌아가기 때문에 개인의 실질적인 기여도가 낮을 수 있다. 일부 개인은 실제 기여에 비해 많은 보상을 받아 처우 수준이 높기도 하다. 이는 자신의 능력과 실제 시장 가치 사이에 괴리를 발생시켜, 새로운 도전이나 이직 시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2. 지식과 관점의 정체
사회 초년생 때 습득한 지식과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다. 이는 빠르게 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경쟁력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3. 실전 감각의 부재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부족하고, 이론적인 지식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학교나 책에서 배우는 것과 다르게 현실의 문제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학교나 책에서 배운 기준을 계속 적용하려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아래 이미지는 AI 분야에서 유명한 Andrej Karpathy라는 사람이 자신이 박사과정일 때와 테슬라에서 일할 때 고민하는 주제가 달라졌음을 알렸을 때 사용한 장표이다. 이처럼 현실의 문제는 교과서적인 방법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4. 짧은 근속 기간과 낮은 성과
일부 '이력서형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은 대중적으로 유명하거나 동경의 대상인 회사를 여러 곳 다녀본 사람도 꽤나 많다. 이런 경우, 몇 개월에서 1년 수준으로 짧게 다녔고 조금만 깊게 파고들어도 성과 없는 것이 드러난다. 대기업 위주로 컨설팅하는 분들은 짧은 근속 기간을 조직에 대한 낮은 충성도로 해석하고 여기서 불이익이 있을 거라 얘기한다. 하지만 보편적인 관점에서는 충성도보다 문제 해결할 시간이 없었고 그로 인해 해당 커리어에서 얻을 게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초반 3개월은 적응과 맥락 파악으로 인해 성과를 내기 어렵고, 후반 1개월 정도는 이직 준비, 의욕 감소, 인수인계 등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리고 성과는 고민한 시간과 부딪힌 시간에 비례해 발생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짧은 근속 기간은 그 기간 동안 충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성장하지 못했을 거라는 신뢰도 높은 신호를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러한 특징들이 그들의 커리어를 이어가기 힘들게 만든다.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이직 과정이 어렵거나, 이직 후 실제로 일해보니 기대와 다르거나, 짧은 기간 안에 퇴사한다. 이는 커리어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장기적인 성장을 어렵게 한다.
마치며
이력서형 커리어는 겉보기에는 성공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취약성이 숨어 있다. 화려한 이력서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제 역량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이력서의 가치도 빛을 잃게 될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커리어는 문제 해결의 역사다'라는 주제로, 커리어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함을 주장하고 어떻게 하면 진정한 의미의 커리어 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