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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짜분석가 Jun 17. 2024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고민상담 프로그램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 아닐까? 내 생각엔 둘 중에 고르면 안 된다. 잠깐 옆으로 빠지자면, "사람은 선한가, 악한가"라는 주제도 사실은 둘 중에 고르면 안 되는 질문이다. 선과 악은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시대마다, 국가마다, 상황마다, 사람 성향마다 다른데 보편적인 질문으로 사람이 선천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주제로 잡은 것이 잘못된 것이다. 전형적으로 사람을 잘못된 프레임에서 생각하게 하고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하는 잘못된 질문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도 각각이 어떤 일인지, 현재 본인의 상태는 어떤지 등에 따라 할 수 있는 조언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 묻는 질문처럼 둘 중에 고르면 안 된다.

좋아하는 일도 아니고 잘하는 일도 아니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오래 할 수 있는 일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해보자. 아마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 명확해 보인다. 문제는 조언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사람이 게임을 대한민국 평균 수준으로 하는지, 상위 10% 수준으로 하는지, 전국에서 100명 안에 들게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꼭 프로게이머가 아니어도 된다면 게임을 재밌게 하거나, 설명을 잘하거나, 무엇이 됐건 게임+@를 했을 때 경쟁력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알맞은 조언을 해줄 텐데 그런 정보는 조언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하는 본인만 알고 있다. 즉,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다. 그러면 한정된 정보를 가진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쪽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방송용 가짜 조언이지 진짜 그 사람에게 도움 되는 조언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면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본인이 직접 결정할 수 있다. 게임을 열심히 했는데 별로 못한다면 스스로 그 꿈을 좇는 행위를 오래 못할 거라는 걸 알 거다. 게임을 잘하는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별로 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게임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았고 오래 못할 거라는 걸 본인이 알 것이다. 그 일을 선택했을 때 생계가 어려울 정도의 보상이 일반적이라면 오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나와 외부에 있는 오래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고려해 배제하듯 선택해야 한다.

물론 이런 상황은 있을 수 있다. A라는 게임의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은데 A라는 게임의 프로대회가 없어져서 B게임으로 전향한다던가, 프로게이머를 할 실력이 안 되어서 대신 해당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한다던가 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상황 말이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은 정확히 예측해서 가장 오래갈 게임을 선택하고 그 게임 기준 내가 가장 오래 할 일을 찾으라는 게 아니다. 이런 외부 상황의 변화가 있을 때 상황에 발맞춰 디테일을 변화하면서까지 오래 할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 데이터분석가라는 직무명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지향한다. 해당 가치를 실현하기에 좋은 직무라 생각해서 데이터분석가를 선택하긴 했지만 지향점이 일반적인 직무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제품, 마케팅, 유저 경험, 개발, 재무, AI, BizOps, 철학, 인과추론, 조직구조, 리더십, 솔로프리너 등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학습하고 적용한다. 그 과정에서 PM처럼, BD처럼, BizOps처럼, 마케터처럼, AI Engineer처럼 일할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심지어는 부동산 공부는 개인적 재테크 차원에서 하고 있는데 이것이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범위가 넓은 것을 보면 알겠지만 뭘 했을 때 가장 시간 대비 결과가 좋을지 예상하고 학습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10점 만점 기준으로 2점 정도 알고 있던 상태에서 일적으로 필요해지니까 6점, 7점 수준으로 역량을 높여서 적용하기도 했다.

우리는 절대 미래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거시적인 방향성을 기준으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고 디테일한 방향은 살아가면서 세상에 맞춰가면서 수정해나가야 한다.



시간은 우리의 취약성을 들춰낸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취약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꼭 직업적인 게 아니더라도 우리가 무언가를 계속하려 할 때 그것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취약성이다. 마치 우리를 시험하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가진 취약성이 발현될 일들이 생긴다. 이때 강한 취약성이 발현되면 우리는 그 일을 그만두게 된다. 대표적인 게 유소년까지는 굉장한 재능으로 평가받았던 운동선수가 성인이 되어 부상으로 빠르게 은퇴하는 경우이다. 약한 취약성은 발현되어도 그 일을 그만두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격언처럼 나를 더 성장시킬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은 내가 그 일을 함에 있어 아주 취약한 요소는 없고, 작은 취약성이 발현되면서 그게 나를 더 성장시킬 거라는 믿음이 있는 일을 하라는 뜻이다.

사람이라면 남들이 멋져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대표 같은 것은 멋짐의 범주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창업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보다 내가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험할 수 있다던지, 음식점을 차리려 하는데 요식업 가게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다던지, 돈에 대해 잘 모른다면 일순간에 망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연예인을 하려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학폭 경험이 있다면 연예인 데뷔하고 나서 학폭논란이 터지고 망할 수 있다. 마약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중에 강한 취약성을 만들어낼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다시 일의 선택 얘기로 돌아가면,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성공은 확률적으로 발생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게 가장 좋을까, 가장 많은 돈을 벌까, 가장 행복할까를 미리 생각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미리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고, 자신은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취약할까 미리 생각하는 것은 쉽다. 이런 식으로 내가 취약한 것들을 걸러내고 남는 것 중에 선택하면 좋은 결정이 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나의 한계를 미리 정해놓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작은 취약성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조금 취약하다고 선택지에서 배제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으로 알려진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처음부터 멀리 가는 걸 목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출발했는데 무언가 잘 안 돼서 관계가 망가지고 거기서 멈추면 결과적으로 짧게 간 것이 된다. 결과를 놓고 보면 둘 다 길게는 못 갔지만 옆에 혼자 빨리 간 사람이 나보다는 더 멀리 갔다. 관계도 취약성을 가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그 취약성이 발현되면 관계가 망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고, 관계의 취약성이 약하고,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하려는 태도의 사람들일 때 비로소 "이 사람들이랑 함께 하면 멀리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직 이런 관계를 못 찾았다면 찾을 때까지 그냥 혼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대신 이런 관계를 찾았다면 관계가 망가지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실제로 IT업계 혹은 IT업계를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는 스터디가 많이 있는 편인데, 안타깝게도 스터디멤버가 괜찮지 않으면 배우려 했던 공부를 잘 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혼자 한 것에 비해 더 긴 시간 동안 더 적은 분량의 공부만 해내는 스터디도 많았다. 하지만 좋은 멤버들을 만나면 확실히 혼자서는 해내지 못했을 분량을 해낼 수 있었다. 이런 커뮤니티는 귀하기 때문에 멤버들 모두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쓰이는 표현 중에 연애하기 좋은 사람과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 다르다는 것인데, 이때 후자는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다. 위에서 사용한 표현을 재사용하자면 믿을 수 있고, 관계의 취약성이 약하고, 문제가 발생해도 해결하려는 태도의 사람이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다.



중요한 문제란 무엇일까?


이번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했다면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쉽게 알 수 있다.

중요한 문제란 앞으로도 오랫동안 다뤄질 문제이다.


돈을 벌고 굴리는 문제, 이동에 대한 문제, 교육에 대한 문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문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구매하는 문제, 아침에 일어나는 걸 어려워하는 문제, 살을 빼고 건강한 몸을 만드는 문제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살아남은 서비스는 인간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했던 문제를 푸는 서비스이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 공급자 관점에 꽂혀서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열심히 풀게 되는 상황이 많다.  특히 그놈의 '혁신'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중요하지 않지만 멋져 보이는 각종 아이디어들이 범람한다. 이때는 6개월 뒤에도 이 일이 중요할까?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물어보는 것이 좋다. 중요한 문제라면 그 문제를 6개월, 1년, 10년 뒤에 어느 정도 덜 문제 되게 했겠지만 그때도 여전히 문제일 것이다.

데이터분석가로서 지표 정하는 일도 중요한 담당 업무인데, 누군가 멋들어진 얘기를 통해 "이게 제일 중요한 지표다"라고 얘기하면 나는 6개월 뒤에도 우리가 그 지표를 보고 있을까부터 생각한다. 만약 6개월 뒤에 아무도 그 지표를 추적하고 있지 않을 것 같다면 그것이 잘못된 지표라고 판단하면 된다.


얼마 전 우리 회사 CEO가 다른 회사 유명한 PO와 얘기했던 내용을 들려줬는데, 그분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세상에는 좋은 문제와 안 좋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안 좋은 문제는 '이걸 풀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고민하는 문제이고, 좋은 문제는 '이걸 풀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확실하고 어떻게 풀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문제이다.

이걸 위 얘기한 것과 접목시키면 이렇다.

안 좋은 문제는 '오래동안 다뤄질지 아닐지 모르겠어서 이걸 풀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고민하는 문제이고, 좋은 문제는 '오래동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이걸 풀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 어떻게 풀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문제이다.


이처럼 우리는 오랫동안 다뤄질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오래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건 어렵고 개선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해결되는 안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과 비슷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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