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의 핵심 내용은 오래 할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종교에 대한 얘기로 시작하겠다. 현재 나는 무교이지만 초등학교 때 교회에 갔었고,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을 깊게 파면서 불교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군대 훈련소에서는 천주교에 가봤고, 자대 배치 후에는 주말에 거의 교회를 갔다. 종교 생활을 한 기간이 있긴 했지만 그 당시에도 신앙심이 깊지는 않았고, 군대 훈련소에서 천주교를 간 것에서 느낄 수 있듯 전반적으로 종교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종교의 현실
우선 메이저 종교 기준으로 대부분의 종교는 현세보다 내세에서의 영광을 추구한다. 쉽게 표현하면 현재 삶이 힘들더라도 천국, 극락으로 대표되는 사후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종교가 추구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실제 종교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생각해 보자. 자녀의 수능을 앞두고 100일 기도하는 것, 가족 친구 지인들의 건강을 비는 것, 시합을 앞두고 신에게 비는 것과 같이 바라는 게 있을 때 얻게 해달라고 신에게 비는 것은 흔하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이다. 영화 브루스올마이티에서 주인공이 신이 되어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자 모두가 로또 1등이 되었던 것은 사람들이 로또 1등 되는 소원을 빌었다는 것과 동시에 천국 보내달라는 기도는 안 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천국 보내달라 했으면 다들 죽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왕자였던 석가모니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가했음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진 수많은 종교인들이 현실에서는 힘들게 살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의 반대 방향으로 살아왔다. 즉,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우리가 믿는 종교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 (이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풀소유로 알려진 혜민스님 사례나 엄청난 자산을 일군 일부 목사들의 사례를 보면 이들은 종교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인데 누구보다 현세에서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지인 중에는 아버지가 목사신데 그 집은 은마아파트(자가)인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은마아파트로 재테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이 목사 집안일 때는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진짜 종교 교리와 실제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의 방향성이 다른 경우가 너무나 많다.
파스칼의 내기라고 알려진 '신이 존재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존재하고 그 리턴이 무한대라면 종교를 믿어야 한다' 같은 주장은 (1)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그 교리에 맞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과 (2) '내가 믿는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가 맞을 수 있다'는 점 두 가지와 충돌하기 때문에 틀린 주장이다.
정확히 위 두 가지 관점을 적용해서 얘기하면 절대다수, 심지어 해당 종교를 업으로 삼는 사람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 교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종교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종교의 가치
그렇다면 종교는 가치가 없을까? 무교인 입장에서 A 종교는 맞고 B 종교는 틀려와 같이 어떤 종교가 옳은지 얘기하는 행위는 확실히 나에게 가치가 없다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시스템 자체는 인류를 위해 유지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의 나는 지독하게 진화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는데 그 관점을 대표하는 문장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이다. 종교는 인류의 역사 동안 살아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인류 사회가 유지됨에 있어 종교가 가지는 가치는 아주 높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있을까?
[인간은 본래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다]
일단 위에서 다루었듯 인간은 심지어는 그 종교가 추구하는 바가 아님에도 해당 신에게 소원을 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예전 곰과 호랑이를 믿었던 사람들, 그리스로마신화, 북유럽신화, 이집트 신화, 산타클로스 모두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람은 아마도 희망에 기반해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에 소원을 통해 그 희망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소속감]
현대에 와서 많이 약해졌지만 인간에게 있어 소속감은 중요한 삶의 일부이다. 종교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고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같은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해 준다. 이건 아주 위대한 일이라 생각되는데 평생 살던 곳과 다른 도시로 이사 가서 만날 사람이 없는 경우 예전에는 떡을 돌리기도 했다. 떡을 돌리는 건 단순히 그게 예절이라서가 아니라 떡을 돌리는 걸 매개로 말을 튼 이웃주민이 생기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지역 내 직장을 다니며 관계를 쌓거나 조기축구회에 들어가거나 종교 활동하는 것 외에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종교는 소속감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치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본인 동네 오픈채팅방, 맘카페, 당근 커뮤니티를 열심히 들어가는 것은 역설적으로 직접 정보와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다.
[윤리적 지침]
인간 사회는 절대 법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법적으로는 문제 되지 않아도 도의적으로 문제 되는 게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윤리도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고 어떤 게 옳고 그른지 판단의 기준이 되어줄 게 필요한데, 종교는 그 역할을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만이 유일하게 존귀하다는 오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인데 실상은 이렇다. 불교에는 나와 타자가 같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 개념이 있다. 이걸 세상에 나만이 유일하게 존귀하다는 말에 대입하면 세상에 나와 타인이 모두 존귀하다는 의미가 된다. 즉 남을 대할 때 마치 나라고 생각하라는 것이고 이것은 황금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같은 내용과 일치한다. 왜 다수의 종교에서 비슷한 개념이 있을까? 종교의 제1의 역할은 인간 사회가 잘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종교는 이웃을 괴롭혀서라도 이익을 취하라던지, 본인의 자산을 축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교는 살아남지 못했다. 인류가 종교에 기대하는 제1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래 생존한 종교의 대표적인 교리들은 결국 인간 사회에서 잘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그것에 따르는 사람은 사회에서 괜찮은 평판을 만들게 된다.
겸손함도 종교인이 가지게 되는 속성 중 하나이다. 이전 글에서 다뤘듯이 성공은 확률적으로 발생한다. 그때 종교가 없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교만해지기 쉽다. 내가 잘해서 잘 됐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면 속으로는 내가 잘했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같은 류의 얘기를 할 것이다. 말과 생각은 무서운 것이어서 형식적으로라도 저런 생각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라는 절대자가 나에게 좋은 기회를 주었고 나는 감사하게도 그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성공 후에도 겸손함을 유지하게 되고 그 성공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연히 기독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주요 종교에는 다 이런 속성이 있다.
반대로 힘들 때도 종교는 윤리적 지침을 준다. 최근 유퀴즈에 뉴진스님의 얘기, 천우희 배우의 얘기에 공통적으로 '얼마나 잘 되려고 이럴까?'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들의 실제 종교는 모르지만 종교적 사고가 들어간 것이다. 절대자가 내 운명에 신경 쓰고 있으며 힘듦이 있으면 그만큼 좋은 결과로써 보상해 줄 거라는 생각인 것이다. 만약 힘들다고 세상에 불만을 표출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면 좋은 보상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힘들 때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윤리적 지침을 주는 것이 종교이다.
아마도 위에서 다룬 이유 외에도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유지되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다룬 내용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것이다. 비합리, 비과학적이라고 느끼는 것을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도 사실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우리 사회의 일부로서 유지되는 것이다. 합리성의 정의는 아래에서 다루겠다.
하지만 신탁, 사주, 타로점 등이 생존해 온 것은 분명히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짜 예언을 잘함으로써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위로를 주거나 불안한 미래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할 포인트들을 주고 판단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도움을 준다. 사람들은 좋은 판단을 A를 선택하냐 B를 선택하냐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시간 내에 뭐라도 선택을 하는 게 진짜 좋은 판단인 경우가 많다. 사주는 적어도 후자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MBTI 같은 비과학은 믿지 않아요
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MBTI 없이 대화를 못 하는 나라가 되었는데, 그러다 보면 종종 '나는 MBTI 같은 과학적이지 않은 건 믿지 않아서 이런 얘기를 싫어한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우리가 얘기하는 MBTI는 실제 MBTI가 아니라 Big 5 성격요인 이론에서 출발했다. MBTI 결과에 INFJ-a와 같이 뒤에 하나 더 딸려 나오는 게 5가지 요인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해당 이론은 심리학에서 가장 신뢰받는 성격 분류 방법이기 때문에 비과학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진짜 MBTI는 측정하고 검증하기 어려워서 Big 5 성격요인을 응용했다는 공식 문서 내용
사실 이것이 이론적으로 탄탄한가 보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현실에서 합리성을 결정하는 것은 과학이나 논리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생존하는가라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적어도 한국인은 혈액형부터 해서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야를 알리고 그것으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정하며 아이스브레이킹 주제로 사용했다. '저 완전 소문자 a형이에요', '제가 원래 P였는데 회사 생활하고 J가 됐어요', '저 ISFJ랑 완전 잘 맞아요' 같은 대표적인 활용 예시들을 보면 사람들은 혈액형이나 MBTI 같은 소재를 활용해 더 잘 생활하고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 사회에서 혈액형에서 MBTI로 이어지는 성격 분류는 우리 사회가 원활히 돌아가는 것에 큰 기여를 하고 있고 그렇기에 유지되고 있다. 앞선 글에서 시간이 무언가의 취약성을 들춰내고 강한 취약성은 그 존재를 소멸시킨다는 얘기를 했다. 성격 분류는 인간 사회의 지속에 있어 취약하지 않기에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이다.
불확실한 현실에서 합리성은 과학이나 논리가 아니라 집단의 지속에 기여하는가로 판단된다.
오해가 있을까봐 첨언하자면, 수학이나 과학 같은 불확실하지 않은 것은 내적 완결성, 이론과 데이터의 적합성 같은 것이 합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