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스쳐 지나간 죽음들을 기억한다. 가끔은 그저 슬펐고, 가끔은 실감하지 못했으며 가끔은 무책임했다. 좋은 사람은 빨리 간다고 했던가. 죽은 사람 중에 그리 좋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보통 쓸쓸했다. 사람들은 내가 죽음에 너무 익숙하다고 했다. 죽음은 두렵다. 그러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두렵지 않다. 아직 나에게 그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으므로.
가끔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탄하곤 한다. 어쩌면 그렇게 열정적이고, 맹목적이며 찬란한지. 나와는 몹시도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주변 또한 예외는 아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바쁘니까. 연애에 난항을 겪고 있는, 친한 듯 친하지 않은 동기 C와 해장국집에서 소주를 기울였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에 고만고만한 생활. 어쩌다 보니 모두 엮여 있는, 익숙함.
"우리가 변한 것 같아."
"뭐가? 원래 좋았잖아."
"그냥 뭐랄까. 힘들어서 그런가? 서로 사정이 안 좋으니까. 나도 바쁘고, 걔는 하는 일이 잘 안되고. 그래서 예민해지는 건 이해하는데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니까."
"힘들어서 그렇겠지? 그리고 사귄 지 좀 되었잖아. 익숙해져서 의지하는 거일 수도 있지."
"아니? 전혀 아냐. 그런 익숙해짐이 아니라 뭐랄까. 낯설어졌어. 처음부터 어떻게 만났는지조차 모르겠다."
"의외네. 역시 다르면 안되는 건가."
"그러게 말이다. 나는 걔가 자신을 좀 돌아봤으면 좋겠어. 너무 나한테만 매달리는 것 같아."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나도 그랬고, 또 누군가도 그러겠지. 좀 기다려 보자."
"과연 이게 사랑일까."
타인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도 사랑일까. 굳이 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나를 사랑하는 것뿐인데. C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안다. C가 누군가에게 깊이 빠지지 못하는 것 또한 안다. 그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모른다고 한다. 그는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한다. 푸르스름한 담배 연기 사이로 공허한 눈이 보인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나는 항상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었다. 천사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구원받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아버렸다. 아무도 나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음을. 처음부터 나는 아무도 구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