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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드리머 Sep 19. 2024

칠순 엄마랑 발리 여행, 시작은 이렇게

위드코로나 시기의 여행입니다


하늘길이 열린 순간, 발리로


"엄마! 7월~8월 특별한 계획 있어? 우리 같이 발리 가는 거 어때? 누가 마일리지 좌석을 취소했나 봐."

"글쎄. 특별한 계획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같이 가는 거다! 바로 표 살게."


 2020년에 한 달 살기를 계획했던 발리 여행이,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며 무산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아쉬움은 여전히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2022년 7월, 드디어 대한항공에서 발리행 직항 노선이 재개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곧바로 마일리지 항공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좌석은 모두 매진. 나는 또다시 한 발 늦은 것 같아 자책했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매일 대한항공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그리고 어느 날, 기적처럼 7월 20일 딱 하루에만 '5석'이 나타났다!


 그 순간 나는 남편에게 소리쳤다. "오빠~ 이건 무조건 가야 해!" 남편도, 엄마도 내 호들갑에 놀라지 않았다. 전부터 엄마의 칠순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함께하자고 했었으니, 이런 갑작스러운 결정이 의외는 아니었다. 우리의 발리 여행은 그렇게 급하게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날짜가 정해졌다. 남은 시간은 고작 3주. 다니던 요가원의 남은 수업 횟수를 채우기 위해 매일 요가에 매진했다. 발리에서 숲과 바다를 보며 요가를 할 상상을 하니 입가가 절로 씰룩거렸다. 사바아사나 자세로 누워있다가 불현듯 떠오른 불안감이 있었다. 코로나! '만약 코로나에 걸리면 어쩌지?' 여행을 앞두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진: Unsplash의Cassie Gallegos




여행을 지켜준 한 줄기 희망, 스페인 보험 


 우리 가족은 두 달 전에 모두 코로나를 앓았으니 그나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걸리신 적이 없었다. 그때는 비행기 탑승 전에 확진되면 비행기를 탈 수 없던 시기였다. 여행지에서 혹시라도 아프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작에 걸리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몹쓸 생각까지 들었다. 떠나기 전까지 엄마에게 마스크 착용에 신경 쓰고, 가능한 외출을 삼가시라고 당부했다.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되었고,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여행 보험 덕분이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항공권 변경과 호텔 체류 비용까지 지원해 주는 스페인 보험이었다. 비용은 꽤 비쌌지만, 가입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아마 이 보험이 아니었다면 여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여행 커뮤니티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보험이었다. 내가 가입한 지 이틀 뒤, 한국 거주자에게는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나는 떠날 운명이었나 보다. 여행 전까지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건강을 관리했다.


내가 짠 발리 루트, 엄마도 설렐까?


 언제나 그렇듯 우리 가족의 여행은 파워 J인 내가 모든 것을 계획한다. 먼저 도서관에 가서 발리 여행책을 빌렸다. 4권을 차례로 읽으며 구글맵에 표시하기 시작한다. 핑크색 하트는 방문할 장소, 노란색 별은 맛집, 초록색 깃발은 카페. 나만의 룰이다. 구글맵이 점점 알록달록해진다. 발리 여행은 많은 관광지를 다닐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하루의 일정은 많아야 1~2개, 아예 없는 날도 많다. 여행지마다 다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많은 곳을 보는 것보다 온전한 휴식을 원했다. 그런데 문득 '엄마가 지루해하시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와 처음으로 떠나는 휴양지였다. 늘 패키지여행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가능한 많은 곳을 다니셨던 엄마에게 이런 여유로운 일정이 괜찮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엄마도 새로운 경험을 해보시길 바랐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이런 루즈한 일정의 여행을 해볼 일이 없으실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걱정을 잠재우고 다시 구글맵을 켜고 동선을 고민했다. 이번이 세 번째 발리 여행인 만큼 큰 그림은 이미 그려졌다. 우선 공항과 가장 가까운 꾸따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꾸따 - 스미냑 - 우붓 - 사누르. 지금까지 세 번의 한 달 살기를 하며 숙소를 옮긴 적은 없었지만, 발리는 달랐다. 도시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숙소 선택지도 다양해, 이 모든 것을 아이들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엄마가 패키지여행으로는 가보지 못했을 풀빌라도 포함시켰다. 번거롭더라도 도시를 이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픽업 기사님은 어디에?


 엄마와는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엄마는 이미 도착해 계셨고,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서 마주하니 괜히 더 반가웠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한껏 들떠 있었다. 평소 북적이던 인천공항이 낯설 만큼 한산했다. 수화물을 보내고 라운지로 향하니,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던 라운지였는데, 이제는 빈자리가 넘쳐났다. 자리를 잡고 앉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고, 드디어 발리 여행이 시작된다는 실감이 났다.


 지루한 비행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발리 공항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지나며 벌레를 본 아이들은 더럽다며 질색했다. 클룩에서 미리 예약해 둔 공항 픽업 서비스 기사가 보이지 않아, 주변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공항 밖에서 대기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30분이 넘도록 기사가 나타나지 않자 엄마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혹시나 하고 확인해 보니, 기사에게 사업용 폰으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예약할 때 써둔 번호를 깜빡 잊었던 것이었다. 뒤늦게 기사를 만나니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나서야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호텔로 향했다. 발리의 밤공기가 우리를 감싸며, 조금씩 여행의 설렘이 다시 살아났다. 긴 여정을 마치고 첫 번째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3시가 가까웠고, 이제야 진짜로 발리의 시간이 시작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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