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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달살기, 자매가 하루 종일 붙어살았더니

달라졌다

by 프리드리머


보이지 않는 거리


언제부터였을까?

매일 붙어 지내던 두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기기 시작한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놀이를 하며 깔깔거리던 아이가,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 변화가 대견하면서도, 갑자기 훌쩍 커버리는 건 아닐까? 그 생각에 마음 한편이 살짝 아려왔다.


레고 조립을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엉덩이를 떼지 않았고, 3D퍼즐이나 크리스탈 퍼즐에도 푹 빠져 지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중 1등은 단연코 코딩. 유튜브를 보며 게임을 만들다 보면 배가 고프지도 않다며 식사시간도 잊곤 했다. 대부분이 혼자 집중해서 하는 활동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늘 언니 곁을 따라다니던 2호는, 그런 언니의 변화를 내심 서운해했다. 어떻게든 언니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었지만, 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가끔은 서러움이 밀려왔는지 눈물을 보였다.

"이제 언니가 날 싫어하나 봐. 나랑 안 놀아. 나보고 혼자 놀래.

난 컴퓨터가 싫어. 우리 언니를 뺏아갔어."

1호 만의 시간을 지켜주고 싶다가도, 2호의 눈물바람을 보면 마음이 괜히 짠해졌다.


KakaoTalk_20251007_103412992.jpg 출처 : Unsplash의Karthik Sridasyam




비워두니, 웃음이 채워졌다


"제주도에 노트북 안 가져갈 거지? 언니 코딩 못하겠네~ 앗싸!"

언니! 제주도 가서 나랑 많이 놀아야 해. 알겠지?"

출발 전, 2호는 언니가 한 달 동안 컴퓨터를 못 한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나 있었다. 언니바라기인 동생이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표현이 많은 동생을 바라보며 1호는 씩 웃었다.


제주도에 가져간 놀잇감(?)은 많지 않았다. 보드게임과 색종이, 색연필, 그리고 연습장이 전부였다. 날이 좋으면 수영을 했고,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저녁엔 주로 나란히 누워 넷플릭스로 영화를 봤다. 놀잇감은 적었지만, 오히려 덜어낸 만큼 더 많이 웃었다. 두 아이는 함께할 수 있는 걸 스스로 찾아냈다.


내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두 아이는 마주 보고 앉아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터지는 웃는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아침이 있을까?


언니가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지내던 어느 날 2호가 말했다.

"엄마! 우리 언니가 돌아왔어."

그 말에는 단순한 반가움 이상이 담겨 있었다. 매일 언니를 기다리던 날들, 함께 놀고 싶어 눈물짓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녹아내렸다.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함께’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두 아이는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색연필을 나눠 쓰며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을 하며 서로의 승패에 웃고, 밤이면 나란히 누워 속삭이다 잠이 들었다. 1호는 동생의 장난에 쉽게 웃었고, 2호는 언니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둘 사이엔 예전처럼 따뜻한 공기가 흘렀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한 뒤, 씩 웃으며 언니에게 뛰어가는 2호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렇게 단순한 시간들이 아이들을 다시 이어주는구나.’ 서로에게 잠시 멀어졌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웃음이 더 빛나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제주에 오길 참 잘했다'


제주도.jpg




다시, 함께


아이들은 결국, ‘함께한 시간’을 통해 다시 가까워졌다.

쉼 없이 둘이 재잘거리고 깔깔거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 둘 낳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2살 터울의 자매라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보다,

‘같이 있을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걸,

한 달 살기 여행을 통해 알았다.


제주에서의 한 달은,

두 아이의 마음을 다시 이어준 시간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도,

그 한 달의 웃음소리는 아직 우리 집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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