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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하나로 지낸 한 달,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by 프리드리머


2층의 로망


“엄마! 우리 2층집으로 갈 수 있어?”

내가 숙소를 알아볼 때 아이가 물었다. 몇 달 전, 2층 단독펜션에서 열린 가족모임이 아이들에게 '2층집 로망'을 만들어 준 모양이었다.

"이번에 엄마가 특별히 2층 단독주택으로 예약했어. 수영장도 있는 곳이야."

아이들은 환호를 지르며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들은 2층을 자기들만의 아지트라며 놀잇감을 챙겨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둘이서 키득거리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3일 지났을까? 2층에서 아이들의 비명이 들렸다.

"아빠! 벌레~!!"

작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등장한 것이다. 남편이 후다닥 뛰어올라갔고, 아이들은 짐을 챙겨 내려왔다.

"엄마! 우리 이제 2층에 안 갈 거야. 그냥 1층에서 놀래."


남편이 1층에서도 벌레를 본 적이 있다고 조용히 말했다. 제주도 주택에는 벌레가 많다는 글이 떠올라 방제업체를 불렀다. 약을 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지만, 그 후로 아무도 2층에 올라가지 않았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2층집만 찾아 헤맸던 걸까.

그저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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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충분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 방 하나, 화장실 하나가 전부였다.

며칠을 지내다가 문득 생각났다.

'4인 가족이면 적어도 방 두 개는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내가, 지금까지 전혀 불편하지 않다니.' 그건 내게 꽤 큰 깨달음이었다. 거실과 방이 집보다 조금 작았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주방에는 식기와 조리도구가 최소한으로만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잘 지냈다.

'그동안 나는 왜 그렇게 기본으로 갖추고 살아야 한다는 편견이 묶여 있었던 걸까?'

프라이팬, 냄비, 그릇은 왜 그렇게 사이즈별로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수저와 컵까지, 모두 가족 수의 몇 배씩 갖추고 살아왔다. 손님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기본값은 누가 정해준 걸까. 나의 그 기준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제주에 가져온 옷, 수건, 신발 몇 개로도 충분했다. 건조기도 없이 습한 날씨였지만, 여름이라 괜찮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 진지하게 바라본 적이 없었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내가 얼마나 많은 물건을 집안 구석구석 쌓아두고 사는지 비로소 돌아보게 했다. 소유욕이 적다고 자부하며 살았던 나였는데.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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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진 거리


그러고 보면 가족마다 라이프스타일이 다를 것이다. 우리 가족은 주로 거실에서 함께 생활하고, 방은 잠잘 때만 들어간다. 굳이 각자의 방이 필요하지 않다. 아마 자신만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게 익숙한 가족이라면 방의 수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방 세 개, 34평'을 기준으로 '국평'이라고 부를까? 사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그저 각자의 스타일대로 살면 될 것을.


아이들과 거실에서 수다를 떨다 보면 문득 남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찾아보면 안방 침대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곤 했다. 내가 "왜 혼자 있어? 뭐 해?"하고 묻고 들어가면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그렇게 네 식구가 퀸사이즈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의 온기를 잔뜩 느꼈다. 당시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온기만큼은 여전히 선명하다.


작은 공간에서 오는 안락함,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거리만큼 우리의 마음도 조금 더 가까워졌다. 공간이 작을수록 가족 간의 대화는 늘고, 관계도 깊어진다. 물론, 이 모든 게 '한 달'이라는 한정적 시간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큰 집이 아니라, 더 가까운 거리였다.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서로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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