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쌌지만, 후회는 없다
제주 한 달 숙소
4인 가족 한 달 살기의 숙박비는 얼마면 적당할까?
2년 전, 치앙마이에서는 수영장 딸린 2 베드룸 콘도를 90만 원에 구할 수 있었다. 과연 제주는 어떨까? 하지만 성수기 제주는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이번은 달랐다. 남편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한 달 살기 아닌가. 게다가 결혼 10주년도 어느새 지나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번 한 달만큼은 특별하다고 의미 부여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주택살이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 속 오래된 소망도 꿈틀거렸다.
누가 봐도 예쁘고 맘에 드는 독채 한 달 숙소는 200만 원이 넘었다. '아. 성수기라서...' 가격을 보고 망설이는데 문득 작년 여름 푸켓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물속에서 6시간 이상을 놀던 모습. 여름의 제주니까, 수영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제주에도 수영장이 있는 숙소가 있을까?
호텔에서만 가능할 줄 알았던 '수영장 있는 숙소'를 결국 찾아냈다. 여러 독채가 모여있는 작은 주택 단지였다. 한 달에 270만 원. '와, 비싸다.' 초성수기에 수영장이 없는 숙소보다 50~100만 원은 더 들었지만, 따로 수영장을 찾아갈 필요 없이 매일 집 앞에서 뛰어들 수 있다니. 가? 말아?
'얘들아. 수영장에서 많이 놀 거지?'
행복은, 수영장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숙소에 도착한 건 저녁 즈음이었다. 아이들은 집 안에 들어가기 전에 수영장부터 살펴봤다. 생각보다 수영장이 크다며 얼굴이 환해졌다. 오로지 수영만 생각하는 듯했다. 예상적중이었다.
다음날 아침, 가족모두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이들이 서둘러 아침을 먹자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 빨리 수영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늘 행동이 느렸던 2호가 언니보다 먼저 수영복을 갈아입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단 말이야?' 약간의 배신감이 스쳤지만, 상기된 아이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우리 먼저 나갈게." 둘이 집을 나섰고, 우리는 아침상을 정리한 뒤 종이컵에 믹스커피 한잔을 타서 수영장으로 나갔다. "엄마~ 아빠~"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며칠 만에 만난 가족처럼 반갑게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산으로 둘러싸인 맑은 공기, 그리고 손에 든 커피 한잔. 그렇게 행복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그래. 이렇게 한 달을 보내면, 비싸도 전혀 아깝지 않아.'
그림 같은 집의 이면
제주도로 내려와 단독 주택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초록 잔디가 깔린 마당에 2층 집이었다. 뒷마당에는 넓은 데크가 있었고, 친구는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수영장을 설치해 두었다. 아이들 또래가 비슷해 금세 어울려 잘 놀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주 주택살이의 현실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인건비가 비싸 직접 잔디를 깎아야 하고, 온갖 벌레들을 셀 수 없이 만난다고 했다. 마당의 나무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는데, 뱀이 나타나 새끼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온몸이 굳어졌다. 그림 같은 집에 산다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저녁이 되어 조명이 켜지자 집은 다시금 나를 설레게 했다. 방금 전 이야기가 무색해질 만큼 집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현실은 무겁지만, 로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불편마저도 품어낸 시간
습하기로 악명 높은 여름의 제주, 방마다 제습기가 필수라는 그곳에서 우리는 한 달을 보냈다. '와, 정말 습하긴 습하다'는 말을 몇 번 내뱉었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잠시 머문다는 생각이 우리를 너그럽게 만들었겠지. 만약 1~3개월마다 도시를 이동해서 살아간다면 어떨까? 한정된 시간 속에서 마음은 더 둥글어지고, 이해심은 한껏 넓어져 좀 더 따뜻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저녁 조명이 켜진 친구 집을 떠나는 길에 마음속엔 모순된 두 감정이 남았다.
녹록지 않는 현실과,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꿈.
비싸도 아깝지 않았던 제주, 그 시간이 결국 우리의 다음 선택을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2023년 여, 우리는 치앙마이 콘도에서 1년을 보냈고,
그로부터 1년 뒤, 치앙마이 주택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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