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더 빛난 시간
처음이었다.
한 달에 이틀만 쉬던 남편이, 처음으로 우리와 서른 날을 함께했다.
제주에 와서야 우리 가족은 비로소 '완전체'가 되었다.
계획은 없었고, 가족만 있었다
한 달에 겨우 이틀만 쉬던 남편과, 결혼 후 처음으로 꼬박 붙어 지낸 시간.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게는 이미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급하게 정한 '한 달 살기'였고, 수영장이 있는 숙소를 예약한 것 외에는 어떤 계획도 없었다. 유일하게 품었던 소망은 제주 곳곳의 도서관을 돌아보는 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우리 오늘 뭐 할까? 어디 갈까?"를 물으면, 2호는 늘 "오늘은 집에 있자"라고 답했다.
치앙마이에서도, 미국에서도, 3년째 한결같은 아이의 멘트.
어디 가지 말자는 아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럴 거면 왜 왔니?'라는 말을 웃음과 함께 삼켰다.
그렇게 우리는 계획 없이, 그날그날 끌리는 대로 하루를 만들어갔다.
좋은 날, 우리의 일상
날씨가 좋든 흐리든, 아이들은 서둘러 아침을 먹고 수영복에 아쿠아슈즈까지 챙겨 신은 뒤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나는 주방 식탁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어주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수영장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 제주에서 맞이한 가장 기분 좋은 아침의 시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아이들은 수영장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라면'이라는 미끼가 통했다. "안 먹고 더 놀 거야!" 하던 아이들이, '라면' 한 마디에 물 밖으로 튀어나온다. 젖은 몸을 수건으로 대충 닦고, 가운을 걸친 채 의자에 앉아 후후 불며 먹는 라면. 먹자마자 벌떡 일어나 "가자!"를 외치고, 다시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수영 후 라면'이 최고의 식사라는 공식이 된 건.
물놀이를 마치고 나면 아이들은 집에서 쉬고 싶어 했지만, 나와 남편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하루에 한 번은 나가야지, 그래도 여기가 제주도잖아." 집 가까운 맛집부터 하나씩 섭렵해 갔고, 언제나 만족스러운 한 끼로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마무리하는 저녁, 이것이 우리의 제주에서의 일상이었다.
비 오는 날의 선물
비가 오는 날이면, 오히려 좋았다.
코로나로 도서관은 닫혔지만, 우리에겐 서점이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서점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왜 나가야 하나며 투덜댔지만, 책을 펼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3~4시간 책을 읽고 나면 괜스레 마음이 뿌듯했고, 시내까지 나온 김에 맛집에 들러 맛있는 한 끼로 배도, 마음도 넉넉해졌다.
특별히 기억나는 날이 있다.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집에 머물렀던 날이다.
재즈곡을 틀어놓고 거실 바닥에 누워 경쾌한 빗소리를 듣는데, 그 자체로도 힐링이 되었다. 빗방울이 땅에 부딪히며 위로 통 튕겨 오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아, 주택에서는 이런 풍경도 볼 수 있구나' 싶었다. 숙소를 독채로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순간을 오래 즐기고 싶어 요를 펼치고 아이들을 불러 셋이 나란히 누워 창밖의 비를 구경하며 수다를 떨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 하루는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집은 작은 영화관이 되었다.
간식 담당은 남편.
간단한 과일과 과자부터 만두, 감자튀김 등. 그중 단연코 최고는 김치부침개였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슈퍼에 가지 못했다. 김치와 양파만 넣은 부침개였는데, 그날의 부침개는 소박했지만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함께라서 소중했던 한 달
집 근처에 놀이터 카페를 찾았다. 카페 겸 식사도 가능하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문득 치앙마이가 떠올랐다. 그때는 아이들이 노는 동안 나 혼자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엔 남편과 함께였다.
제주는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이자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 충분히 충전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었다.
제주에서의 한 달은 거창한 계획이 없어도 충분했다.
평범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했기에, 그 모든 날들이 오래도록 따뜻한 일상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