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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한 달 살기, 제주에서 시작하다

네 식구, 온전체가 되어

by 프리드리머


한정판 남편


우리 집에는 하숙생이 있었다.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와, 집에서는 잠만 자는 존재. 그 이름은 '남편'이었다.

월세도 안 내는 하숙생이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부재가 익숙했다.

한 달에 고작 2번 쉬는 아빠였지만, 그날만큼은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다행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 이유는 아마 ‘레어 아이템’처럼 귀해서였을 거다. 남편이 없는 동안, 나는 홀로 아이들을 돌봤다. 나만의 자유시간은 사치였고, 남편은 일에, 나는 육아에... 서로 다른 무게를 짊어진 채 우리는 각자의 역할만 수행했다.

역할극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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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깨운 건 여행이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사회에서 내 이름 석자는 사라져 가는 듯했다. ‘엄마’라는 역할에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거기엔 보상도 성취감도 없었다. 가끔은 쓸쓸했고, 외롭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첫 번째 한 달 살기를 다녀온 이후였다. 전업맘이기에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고, 그 선택이 내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다음엔 어디가?" 하고 물을 때마다, 나는 또 다른 도시를 찾아 헤매는 즐거운 상상에 빠졌다.


치앙마이로 한 달 살기를 떠났을 때는 첫 5일간 남편이 함께했다.

하지만 두 번째 미국으로 떠날 때는 함께하지 못했다.

우리가 모두 떠나고 난 뒤, 퇴근 후 컴컴하고 텅 빈 집에 들어왔을 남편의 마음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럼에도 그는 늘 우리의 이야기를 함박웃음으로 들어주었다. 치앙마이 생활도, 미국에서의 일상도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묻곤 했다.


그런 남편이, 아이들과 추억을 이야기할 때면 늘 조용해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다음번에는 꼭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숙생, 언제든 기다린다.




코로나, 뜻밖의 여행권


주 1회 쉬기도 힘든 남편에게 일을 정리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당장의 생계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가 터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남편은 일을 정리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 소식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가족이 함께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떠오른 건 '한 달 살기'였다.

위기는 우리 가족의 예기치 못한 여행 초대장이었다.


남편은 한 달씩이나 떠나는 건 무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강하게 밀어붙였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시간이 오겠냐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한 달쯤은 쉬어가자고.

그는 탐탁지 않아 했으나, 끝까지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마 남편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야말로 우리 네 식구가 다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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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땡! 제주 당첨


처음엔 발리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비행길이 막혀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바다 건너 섬 '제주'를 택했다.

멀리 못 가도, 비행기 한 시간이면 다른 세상이 열렸다.


이제...

나에게도 남편이 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돌아왔다.

드디어

우리 집 하숙생은 진짜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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