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사이에서 2 _사회 제도 속에서 '정상가족'

by freeart k

얼마 전 건강검진을 했다. 위내시경에 대한 내용 설명을 듣고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마지막에 서명을 하고 보호자 연락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저혈압에 저체중이라 수면 마취할 경우 응급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한다.

"친한 친구 연락처를 적어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무조건 가족 관계여야 한다고 했다.

"저는 부모가 안 계십니다" 하니 형제자매, 고모, 이모라도 적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몇 분간 실랑이를 하다 결국은 친구 연락처를 적고 수면 내시경을 받았다. 15년이 넘도록 가족과 연락한 적이 없는데, 자주 연락하는 가족 같은 친구는 왜 안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이 세상 고아들은 수술이나 수면내시경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매우 씁쓸했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뭔가 나 자신이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이 아님을 느꼈다. 어떠한 이유든 가족이 없다는 사실은 슬픔이 아니라 행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친구는 가족이 될 수 없고, 나와 혈연관계는 안부도 없이 잊혀 가는데 그들은 합법적인 보호자라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보호하며 살아왔다. 나를 보호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보다 그걸 증명할 수 없다는 게 더 외로웠다. 관계의 깊이는 서류상의 혈연관계보다 마음의 거리에서 결정되는데 사회는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단지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관계가 아니라 위급할 때 망설임 없이 달려올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씁쓸함은 나의 혈관 속 마취가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화면 캡처 2025-10-11 142027.jpg

에드워드 호퍼 1952 oil on canvas 그림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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