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휴직이 처리되는 중에 이전에 같은 팀이었던 남자 중간관리자에게 점심시간에 다가가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다. 아직 직원들은 내가 휴직할 예정인지 대부분 모르는 상태였다.
뜬금없이 갑자기 죄송하다니, 그분이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사과를 할 만큼 크게 잘못한 일은 없었으나 감정이 요동치던 중이었던 나는 혼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중간관리자분께서는 갑작스러운 나의 사과에 잠시 생각을 고르시더니, "남의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라고 답해주었다. 그 말을 듣자 울컥해져서 더 서있을 수가 없어 죄송하다는 말을 한 번 더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우울증을 앓으니 스스로 느끼기에 부끄러웠던 행동과 별 것 아닌 일도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기비판, 반성 등이 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인 건 알겠는데 나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진 않았다.
의사에게 "사람 만드는 약을 지어주셨나?"라고 물었다. 의사는 웃었다.
친해지고 싶었던 한 선배 부서원에게 조용히 다가가 휴직을 한다는 말을 꺼냈다. 어디가 아프냐는 물음에, 주위에 다른 부서 직원들이 함께 있어 속삭이듯 얼버무렸다. 힘든 출장을 마친 후여서 그분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인사를 하고 바로 나왔어야 했는데, 그 당시 퇴사한 한 남직원에 대해 선배가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공무원이랑 적성이 많이 안 맞았었다고(적성에 맞는 일하는 사람이 얼마냐 되겠냐만은) 하더라'며 내가 주워들은 말로 남직원을 위로하자 선배는 "부서에서 뭔 일이 있었(겠)지."라고 대답했다. 갑자기 의원면직한 MZ직원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선배의 대답을 들으니 질병휴직하는 나에게 빗댄 말인가 싶어 유쾌하진 않았다.
"질병휴직은 월급이 좀 나오지?" 그분이 물었다.(일 안 하고 쉬면서 돈 받느냐는 말로 내 귀에 도착했다.)
"네......" 나는 대답했다.
"응, 그래. 들어가서 잘 쉬었다 오고." 그분이 다시 답했다.
휴직 전 근무 마지막 날까지 겉보기에 걸어 다니고 출퇴근을 했으니 누군가에겐 꾀병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사실 타인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휴직 직전 부서원과의 마지막 인사에서 나는 민망하고 죄스러웠다. 혼자 조용히 집으로 사라지고 싶었으나 내 질병에 대해 이해도가 가장 높았던 여자 중간관리자분께서 부서원과 마지막 인사를 시켜주었다.
질병휴직으로 들어간다는, 예의상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의 갈 길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작별 인사가 끝날 즈음이었다.
중간관리자분께서 아직 인사를 못 나눈 마지막 직원에게 나를 데려갔다. 질병휴직을 하게 되어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다고 인사를 하려던 참인데 그 말은 들은 그 선배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어디가 아픈데?!~"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이 다 들릴만한 큰 목소리였다. '일부러 저렇게 말씀하시나?'하고 당황했다. 암이었으면 정정당당하게 말을 했을 텐데 정신과 질환은 이상하게 말하기가 말 그대로 '거시기'하다. 눈치 없는 그 선배의 반응에 중간관리자분께서 재빨리 "얘기하면 길다."면서 센스 있게 받아쳐주었으나 바로 이어 조개 같은 선배의 입술이 또 열렸다.
"그러다 둘째 가지는 거 아냐?!"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좀 전에 중간관리자분께서 분명히 내가 '질병휴직'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부서원 모두 그 말을 들었을 듯한데, 그 말을 다 듣고 있을 부서원들을 생각하니 왠지 쪽팔려서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내가 휴직한 후 몇 달 뒤 조개 같은 입술의 그 선배는 예상대로 중간관리자로 승진을 하였고, 예상했음에도 소름이 끼친 나는 눈치 없는(누군가는 그분을 T성향이라고 했고, 또 다른 T성향의 사람은 그분을 정말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F를 선호하고 예민한 나는 둘 다 별로였다^^;;) 그 선배와 한 부서에서 다시 만나지 않길 바랐다.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내 차를 보고 지나치는데, 차체 오른편이 앞에서부터 뒤까지 누군가 시원하게 긁고 간 것을 발견했다. 언제 긁혔는지 알 수 없었다. 하필이면 이런 사고가 날지 예상도 못하고 블랙박스는 몇 주간 꺼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