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블랙박스를 껐다.
당분간 차를 끌고 직장에 나갈 일이 없으므로 블랙박스에게도 휴식의 시간을 주었다. 하루 온종일 반짝거리던 블랙박스는 주인과 함께 빛을 잃었다.
직장에서의 마지막날까지 겉보기에 멀쩡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나왔으나 내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긴장이 풀리자 직장에 있을 때보다 우울증상이 더 심해졌다.
학교 가는 초등학생 아들의 아침밥은 아예 챙겨주지도 못했다. 아침밥은커녕 몸조차 일으키지 못했다. 눈을 뜨지도 못하는 몸으로 방에 드러누운 채 아이의 등교인사를 들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나는 "어, 그래."라는 대답만 겨우 했다.
초등 저학년인 아들은 알람을 맞춰놓고 스스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빵이나 초코파이를 먹고, 옷을 갈아입고, 학교를 갔다. 아픈 엄마를 깨우지도 않았다. 참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너무너무 미안했다.
돈도 안 벌면서 살림도 하지 않고 아이 양육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라니... 가정의 민폐덩어리로 전락해 버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어린 아들도 가기 싫은 학교를 억지로 가는데 나는 몸도 일으키지 못했다.
오전 늦게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숨 막히는 친구, 각종 통증이 있는 친구, 무기력한 친구, 피곤한 친구, 불안한 친구, 삶에 대한 의심과 짜증이 나게 하는 친구까지 나에겐 버거운 친구들과 하루종일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고.통.스.러.웠.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눈을 뜬 순간부터 나는 잠자는 친구만 기다렸다. 약을 먹고 잠이 들면 자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고통도 느끼지 못했으므로 잘 시간만 기다렸다. 오전 10시에 일어나 오후 9시가 되면 잘 준비를 했다. 아직 잠이 오지 않는 아이와 어둠 속에서 누운 채로 끝말잇기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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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천천히 꼬이다가 나는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오전 11시를 지나 12시로 더 늦어졌는데 저녁에 잠 잘 준비는 오후 9시가 되기 전으로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하루에 16시간을 잘 때도 있었다. 그땐 잠만이 유일한 나의 안식처였다. 의사에게 수면시간을 이야기했더니 그건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약으로 억지로 자신을 재우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잠에 들어야 나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나마 잠이라도 드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늦게까지 태블릿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아이는 점점 빨라지는 나의 수면시간에 적응하지 못했고, 내가 잠이 들면 아이는 자신의 잠이 쏟아질 때까지 게임과 너튜브를 시청하였다. 물론 내가 잠에 들기 전, 몇 시 안에는 자라고 얘기했지만 아이 스스로 달콤한 태블릿을 통제하지 못하였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잠에 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 "엄마?"
잠든 엄마를 불러 한동안 대답이 없으면, 내가 완전히 잠든 것이므로, 아이는 밤늦게까지 마음껏 태블릿과 물아일체가 되었다. 어느 날은 내 발 쪽에 머리를 두고 태블릿을 바로 옆에 둔 채 자고 있었고, 소파에서 태블릿을 하다가 잠이 든 채로 아침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아이에게 장시간의 스마트기기 사용이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아이를 통제할 힘도 잔소리할 의욕도 없었다.
아이는 우울증을 앓는 엄마 때문에 불안해하면서도, 잔소리를 하지 않고 태블릿을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에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존재했다.
엄마가 우울증이라는 걸 친구가 알면 부끄럽겠냐는 나의 질문에 "쪼끔..."이라고 아이는 대답했다. 솔직하게 답해주어서 고마웠다. 자신을 키우느라 힘들어서 엄마가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닐까 자책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에게 나의 '우울증'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우울증에 걸리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설명인지 변명인지를 했고, 우울증에 걸린 건 아이를 포함한 누구 탓도 아니라고 했다. 덧붙여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아픈 사람이지 미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앞으로 엄마와 비슷하게 힘든 사람이 있거든, 놀리지 말고 도와주라고 말했다. 아직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아이는 내가 한 말을 어른들보다 훨씬 더 잘 이해했다.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아니에요. 아픈 사람이 더 힘들죠..."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울기 싫은데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눈이 빨개지고 콧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