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어찌어찌 두어 달 직장을 다녔다.
우울, 불안, 숨쉬기 힘듦과 같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은 제쳐두고서라도 심한 불면, 일어나기도 힘든 몸, 알 수 없는 통증과 운전 중이든 근무 중이든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졸음 속에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우울증으로 질병휴직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중간관리자와 부서장에게 휴직에 대해 보고하였다. 질병휴직 대신 가사휴직을 하면 안 되겠냐는 부서장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신과 보호병동에 입원까지 하고 온 마당에 아파서 내 몸을 돌보려고 휴직을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돌보려고 휴직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추 농사를 지어보라는 부서장의 조언에 '고추 농사를 지을 힘이 있으면 그 사람이 우울증이겠냐.'라고 속으로 부정했으나, 그것이 부서장이 내게 해 줄 수 있는 그 만의 위로방식이라는 걸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셔서, 모기가 들끓는 좁은 고랑에서 주렁주렁 고추를 매단 채 양쪽으로 가지를 늘어놓고 있는 고추 수확만 해봐도 허리가 나가는 힘든 일이란 걸 해봐서 안다. 수확 전에 고추모종을 심고 땡볕에서 김을 매는 과정은 무릎이 나가는 고된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부모님을 보고서도 멀쩡한 몸을 두고 아파서 휴직을 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질병휴직은 급여의 일부분이 나오고 최대 2년까지 연장 가능하나(그 기간 안에 호전되지 않으면 잘린다), 가사휴직은 급여가 없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을 돌보기 위해 1년만 휴직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부서장이 왜 가사휴직을 물어보았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어느 공무원 아내가 암에 걸려 질병휴직을 하였고, 공무원 남편이 그 아내를 돌보기 위해 가사휴직을 하였다가 기간 안에 아내가 호전되지 못하여 휴직을 더 부여받을 수도 없어 부부가 동반 퇴사를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날이 갈수록 진단서 발급을 받기가 엄격해지는 것 같다.
질병휴직할 경우 진단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몇 개월이상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문구인데 의사는 유독 치료 기간을 기재하는 것에 예민한 것 같다. 말기 암에 걸렸는데도 '몇 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기재해 줄 수 없다는 의사의 이야기에 휴직처리가 힘들었다는 직원의 이야기도 들었다. 아파도 진단서 떼기가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화려한 진료기록에 진단서를 떼는 건 걱정하지 않았다. 꾀병이 아니라 정말 아팠으므로... 개인병원에서는 의사의 상담과 약 복용 외에 할 수 있는 검사가 없어서 그런지 3개월 이상의 진단서를 발급받기 어렵다. 약이 이미 몸에 맞지 않고 있었고 모든 심리검사와 다양한 치료가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았다. 나의 경우 진단서 발급을 전혀 걱정하진 않았으나 요양기간을 6개월을 받고 싶었다.
이유는 단 하나, 휴직자를 대신해 결원을 채울 수 있는 기준이 6개월 이상의 휴직 이어야 했다. 6개월 이상 휴직이 승인되어야 부서에서 한 명의 결원이 생긴 걸로 되어 공식적으로 휴직자를 대체할 인원을 받을 수 있다. 즉, 복직자가 있거나 할 경우 내 자리를 채울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부서나 인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므로 얼마 남지 않은 정기 인사발령 때까지 빈자리가 채워지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3개월짜리 진단서를 발급받게 되면 근무 중이었던 그 부서에서 내 존재가 사라지지 못하고 대체인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우습게도 그런 것까지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부서에서 아예 빠져주는 것이 내 죄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답답해 보여도 그 당시 우울증 환자의 사고방식은 그렇게 흘러갔다.
반대로 6개월 미만의 휴직이라면 원래 근무하던 부서로 복직이 가능해 선호하는 부서일 경우 오히려 6개월 미만의 휴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격무 부서일 경우 6개월 이상 휴직해 복직할 때 다른 부서로 부서 세탁하려는 남직원의 육아휴직도 간혹 보았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사람 사는 일이 자로 재듯 모두 공평, 공정할 수만은 없는 것이니 비난할 바는 아니었다. 내가 속한 부서는 격무 부서가 아니어서 복직이 임박한 직원의 경우 희망할 가능성이 높은 부서였다. 물론 그 안에서도 선호 업무와 비선호 업무가 또 나뉘긴 했지만...
옮긴 대학병원의 약도 나에게 맞지 않았고, 외래로 치료가능한 tDCS*치료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의자에 기댄 채 머리에 전선 같은 것을 붙여 자극을 주면 기계에서 딱딱 딱딱 소리를 내며 약간 불쾌하면서도 큰 통증은 없는 따끔한 느낌이 머리에 전해졌다. 임상병리사에게 열 번 정도 치료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호전이 없었다. 병원진료와 약값에 상관없이 tDCS 한번 치료에 7~8만 원의 비용이 별도로 들었다. 시도해 봐야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기에 동아줄을 잡는 심경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의사의 처방약도 tDCS도 우울증의 불씨를 사그라들게 하지 못하였다.
[*tDCS : 경두개 직류전기자극, Transcranial direct current stimulation, 두피 위에 위치한 전극을 통해 뇌 표면에 약한 직류자극을 보내 신경세포의 자발적인 활성을 일으켜 뇌 기능을 정상화하고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 방법. 약물 치료의 효과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나 약물 치료의 부작용으로 약물 사용이 어려운 경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울증 및 인지기능저하에 도움이 된다.]
그 후에 의사는 '전기치료'를 권했다. 더 비싸고 마취를 해야 해서 입원을 해야만 가능한 치료였다. '전기치료'를 받고 나면 대부분 치료 직전 단기기억을 상실했다가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곤 했다. 당장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30분 이상 의자에 앉아 머리가 약간 간질거리면서 시원해지는 느낌이 드는 TMS** 치료를 일주일에 병원을 세 번 정도 들락거리면서 열 번 이상 받았으나 역시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비쌌고 몇십 분을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있는 게 많이 힘들었다. 아이들은 받기 힘든 치료일 거 같다고 했더니 임상병리사 역시 아이들은 좀 힘들어한다고 했다.
[**TMS(경두개 자기 자극술,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자기장을 이용해 뇌 표면에 전류를 발생시켜 뇌세포를 직접 자극하는 치료술, 우울증 치료에 사용하는 비수술 뇌 자극술]
< 비싸고 효과를 보지 못한 두 가지 치료(by 네이버이미지)>
6개월의 진단서를 받았다. 그 와중에 입퇴원 날짜는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왜냐고 묻는 의사에게 직장에서 정신과 입원까지 한, 더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된다 하니 입퇴원 날짜를 지워주셨다. 그랬더니, 단지 우울증이라는 애매한(?) 정신과 질환으로 6개월이나 진단을 받은, 더욱더 그럴싸한 꾀병 같은 진단서가 발급되었다. 후에 진단서가 원본이 맞냐는 인사담당자의 추궁에 그냥 입퇴원 날짜를 그대로 기재해서 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직장에 우울증 진단서를 냈더니...' 관련 글 : https://brunch.co.kr/@freeblue/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