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정신과 입원 후 퇴원을 했다.
병원 앞에서 남편의 차를 기다리며 토요일 오전의 한산한 대학병원을 둘러보았다.
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에 대한 에피소드 몇 가지를 재밌게 이야기하자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달갑지 않았을 남편이 이런 류의 말을 한마디 했다.(정확한 워딩 기억 안 남)
"상태들이 다들 왜 그렇노."
묘한 분위기를 웃겨보려다 순간 뜨끔했다. 상태 안 좋은 그곳에서 내가 방금 나왔으므로...
그 후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를 KTX역으로 마중을 나갔는지, 아님 내가 기차를 타고 친정으로 가서 아이를 데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장으로 다시 출근하였다.
다행히 민원부서가 아니라 기간 안에만 일을 끝내면 되는 업무여서 그나마 며칠간 자리비움에 대한 부담이 덜했다. 하루종일 자연광 하나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에 처박혀 있으니 햇빛이 보고 싶었다. 같은 부서 내에, 직원들이 선호하는 업무이면서 햇빛이 잘 들어오는 자리는 MZ가 점령하고 있었다. 부서 내에서 직원들이 비선호하는 업무를 하는 우리 팀은, 창문하나 없는 사무실 공간에서 MZ보다 연식이 있는 얼굴들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상대적으로 우리 팀원보다 건강할 나이의 MZ들은 햇볕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그런지 중간중간 수다를 떨고 음악을 들으며 화기애애한 근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햇빛은커녕 전등으로 어둠을 밝혀야 하는 공간에서, 다초점렌즈를 끼고 있어도 벌써 노안이 온 두 눈은 어두침침해져 갔고, 퇴원한 지 얼마 안 된 내 심신은 하루하루 더 시들어갔다. 그전까지 있으나 마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햇빛의 존재감이 우울증을 통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 몸소 깨닫게 되었다.
바로 앞에 창문이 있진 않아도 햇빛의 조망권이 조금이나마 미치는 창문이 있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몸은 느끼고 있었다. 햇살을 쬐며 일하고 싶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부서장에게 빈자리로 이동하고 싶다고 보고하자 허락해 주었다. 업무팀이 다른 나 혼자 창문이 있는 세계로 나가 있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져 결국 자리를 옮기진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부러 동네를 걸어보려고 했다. 겨우 일으킨 몸으로 일부러 커튼을 '촥' 소리 나게 젖혔을 때 햇살이 다른 날보다 강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용기를 내어 걸었다. 공원 입구에서 테마별 안내도를 보았는데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걸어서 십분 거리인데 왜 이제야 처음 왔을까?
한 시간쯤 걸었고 몸에 힘이 없는 상태라 주저앉고 싶었다. 그때쯤 팔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을 받아 손을 쫙 폈다 접었다 했다.
입맛이 없어 조금 움직이면 허기가 지겠지 싶어 겨우 힘을 내 걸은 것도 있었다. 약을 먹어야 했으므로.
햇살이 가득한 도서관 뒷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단정한 정장에 핸드백까지 풀 착장한 잘 차려입은 중년 여성 두 명이 다가오려는 걸 느꼈다. 피할 틈도 없이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했다. 다음에 이어질 그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 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안녕 안 하니까 말 걸지 마세요!”
황당했을 그녀들은 당황하지 않고 “ ~ 적 ~ 세요~”('힘들 땐 누구를 믿으세요~' 뭐 그런 말이려나?)라는 말을 내 뒤통수에 날리며 더 이상 나를 자극하지 않았다.
무교인 내게 종교가 있었다면 내가 안 아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