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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야 비로소 단단해진다

콘크리트

by FreedWriter

처음엔 물처럼 부드러웠다. 섞이고, 흐르고, 제멋대로 퍼졌다. 손으로 휘저으면 말랑하게 꿈틀대던 그 콘크리트의 본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굳어졌다. 흘러내리던 가장자리도 어느 순간엔 멈췄고, 이내 형태를 갖췄다. 콘크리트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격한 움직임을 멈춘 다음, 조용히 시간을 견디면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나는 가끔 내 삶이 콘크리트와 닮았다고 느낀다. 젊을 땐 유연한 게 미덕이라 여겼다. 이리저리 휘고, 눈치 보고, 어떤 틀에든 맞춰가려 애썼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모양은 사라진다. 콘크리트가 그렇듯, 결국에는 어딘가에 딱 맞춰 굳어야만 의미가 생긴다. 무르기만 한 삶은 끝내 다 쏟아져 어느 한 틀에 박힐 수밖에 없었다.


거푸집이라 했다. 콘크리트를 부어 넣기 전에 원하는 모양으로 굳게 하기 위해 설치하는 틀. 흘러내리는 삶도 거푸집이 있어야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그 거푸집은 누군가의 조언일 수도, 내 안의 신념일 수도 있다.


시간이 주는 가장 묵직한 선물은 ‘굳어짐’인 것 같다. 말랑했던 생각이 신념이 되고, 흔들리던 마음이 중심이 된다. 이겨낸 날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단단한 구조가 되어간다. 흠집이 생기면 어떤가. 그것도 이력이다.


콘크리트는 철근과 함께할 때 가장 강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안쪽에서 지지해 주는 누군가 없으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좋은 분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는 무르지 않아도 괜찮다. 한 번 굳은 나의 길 위에, 나는 천천히 나의 삶을 다시 세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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