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현역 시절, 에너지 절약 캠페인은 늘 항상 함께 해왔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종이컵 대신 머그컵 생활화'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고, 표어 밑에는 간단한 차실을 운영할 수 있는 전기포트기와 다양한 종류의 머그컵이 준비되어 있었다. 머그컵이 있기 전, 그 자리에는 종이컵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종이컵 대신 개인 머그컵을 사용하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자원을 아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물론, 특수한 경우를 대비한 종이컵은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문득, 무심한 듯 가지런히 놓여있는 머그컵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머그컵은 세척이 필요하다. 세척을 하려면 세제와 물이 반드시 사용된다. 하루에 여러 명이 머그컵을 쓰고, 또 씻는다면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과 세제는 결코 적은 양은 아니었다. 게다가 세척 도중 흘려보내는 물줄기를 생각하면, 과연 이 모습이 진정한 절약일까 하는 의문만 남았다.
그에 반해, 종이컵은 단순했다. 출근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종이컵은 다 마신 뒤, 물을 마시거나, 차를 마실 때도 항상 함께 했다. 새로운 컵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내가 마신 컵이니 커피나 차의 흔적이 조금 묻어 있더라도 마시는데 문제는 없었다. 종이컵의 바닥과 옆면이 조금은 눅눅해지고 색이 변해도 하루를 사용하는데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종이컵 하나로 하루를 마치고 버리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내 행동을 '변명'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머그컵도 사용했지만, 부득이하게 종이컵을 사용하게 되는 날이면 항상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물 한 컵을 아끼자고, 머그컵을 씻는 데 열 컵의 물을 흘려보낸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절약일까? 그 컵을 세척하기 위해 행정병이나, 누군가는 또 수고로움을 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효율을 중요시하는 군에서 종이컵 하나는 당시의 나에게 사고방식을 상징하는 작은 컵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절약의 본질은 단순히 쓰임의 차이에 있지 않았다. 종이컵을 사용하든, 머그컵을 사용하든 결국, 자신이 얼마나 아껴 쓰고, 끝까지 책임 있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머그컵을 사용해도 물을 흘려보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세척한다면 그 또한 올바른 절약이다. 가수 김종국 님이 설거지할 때 물을 '졸졸' 틀어놓고 사용하는 모습은 배워야 하는 점이지 않을까? 종이컵도 마찬가지다. 한 번 쓰고 버리는지, 하루 종일 사용하고 버리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군 생활에서 배운 작은 습관은, 전역한 지금도 남아있다. 직장 생활할 때, 다른 직원이 종이컵에 타준 차 한 잔을 다 마시고, 그 컵에 물도 마시고, 차도 더 마시니 의아하게 바라봤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의 생각을 전달해 주니 군인들은 다 그런 줄 알고 신기해했다. 모두가 다 그렇진 않다고 바로잡아줬다.
절약은 결국, 단순히 환경이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행동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